큰 경기 강했던 정상급 포수..꽃피우던 2000년 쓰러져

7일 향년 4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임수혁은 2000년 경기 중 그라운드에서 쓰러지기 전까지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서 7시즌 동안 포수로 활약했다.

서울 토박이인 임수혁은 서울고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1994년 신인 2차 지명을 통해 계약금 5천500만원, 연봉 1천200만원을 받고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185㎝, 90㎏의 건장한 체구에 강한 어깨, 장타력을 겸비해 입단 당시부터 대형포수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7시즌 동안 통산 488경기에 출장해 1천296타수 345안타 타율 0.266에 47홈런을 때리며 257타점을 올렸다.

입단 초기에는 선배 김선일과 동기생 강성우의 그늘에 가려 변변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타고난 슬러거로서의 자질에다가 수비 능력도 향상되면서 데뷔 2년째부터 롯데의 안방 자리를 꿰찼다.

입단 3년째인 1996년에는 113경기에 출장해 타율 0.311, 홈런 11개 타점 76점을 올리면서 단숨에 정상급 포수로 뛰어올랐다.

이듬해 무릎 부상에 시달리면서 불과 49경기밖에 못했지만 1998년 다시 주전 포수로 복귀했다.

1999년에는 73경기에서 타율 0.250을 때리는 데 그쳤지만 포스트시즌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삼성과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3-5로 뒤지던 패색이 짙던 9회말 삼성 마무리 투수 임창용을 상대로 동점 2점 홈런을 뿜어냈다.

연장전에서 팀이 6-5로 역전승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임수혁은 영웅으로 우뚝 섰다.

임수혁은 이전에도 유독 큰 경기에 강한 클러치히터 기질을 자랑했다.

고려대 1학년 때인 1988년 연세대와 정기전에서 당시 최고 왼손 투수로 불리던 조규제를 상대로 투런포를 터뜨렸고 1995년 OB(현 두산)와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는 연장 10회초 안타보다 값진 큼지막한 희생플라이를 날려 팀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사람 좋은 푸근한 미소 덕분에 적이 없는 '호인'으로 통했던 임수혁은 '야생마'라는 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왼손 투수 이상훈(전 LG)과 범상치 않은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1년 후배인 이상훈과 강남중-서울고-고려대에서 내리 한솥밥을 먹었던 임수혁은 친형처럼 자상한 마음씨로 방황하던 이상훈을 보살핀 것으로 잘 알려졌다.

이상훈이 서울고 1학년 때인 1995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2회전에서 포도대장 임수혁과 찰떡궁합을 이뤄 성광고를 제물로 2피안타 완봉승을 거두면서 본격적인 밀월관계가 시작됐다.

고대 재학시절 임수혁은 경제적으로 궁했던 이상훈에게 용돈도 쥐여줬고 팀을 이탈하던 이상훈의 마음을 야구 쪽으로 돌려놓는 등 그라운드 안팎에서 친형 노릇을 톡톡히 했다.

프로에 와서도 친분 관계를 이어갔으나 임수혁은 제대로 꽃을 피워보기도 전인 2000년 4월1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경기에서 2루에서 의식불명으로 갑자기 쓰러졌고 식물인간 판정을 받은 뒤 10년 가까이 투병 생활을 했다.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롯데뿐 아니라 다른 구단 선수들의 지원을 받았지만 다시 그라운드에 서지 못하고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박성진 기자 cany9900@yna.co.krsungjin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