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무역업체 A사 구매담당자인 이모씨(38)는 2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찾아 3000만원어치의 설 선물을 구매했다. 작년 설에는 100여명의 직원들에게 줄 선물로 15만원대 호주산 정육세트를 줬지만 올해는 25만원짜리 한우세트로 바꿨다. 그는 "경기 회복세를 타고 회사 자금 사정이 좋아져 직원들의 선물 구매액을 1000만원 정도 늘렸다"고 귀띔했다.

#2.롯데백화점 법인영업팀의 배풍근 과장은 지난달 말 B금융사에 10만원대 갈치세트 3200만원어치를 팔았다. B사는 2008년까지 매년 롯데백화점에서 설 선물을 대량 구매하다 지난해엔 사지 않았다. 배 과장은 "구매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한 번 들어오라고 해서 계약을 성사시켰다"며 "지난해 불황으로 구매를 포기한 기업들을 중점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가 '설 대목' 예감

설 연휴(13~15일)를 열흘 앞둔 백화점,대형마트,온라인몰,특급 호텔 등 유통가가 '선물 특수'로 활기를 띠고 있다. 아직 설 시즌 초반이지만 세계적인 불황으로 명절 대목이 자취를 감췄던 지난해 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롯데백화점은 매장 선물판매를 시작한 지난달 29일부터 1일까지 나흘간 매출이 작년 설 시즌 같은 기간보다 126%,신세계백화점은 138% 각각 급증했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30일~이달 1일 설 선물 매출이 82% 증가했고 롯데마트는 150%나 늘었다. GS샵,CJ오쇼핑,G마켓,롯데닷컴 등 홈쇼핑과 온라인몰도 20~40% 늘어났고 웨스틴 조선,신라,쉐라톤 워커힐 등 특급호텔 선물판매량도 20~50% 증가하는 호조세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소비심리 회복과 함께 월말 결제일에 맞춰 기업들이 서둘러 구매에 나서 초기 매출 증가세가 높다"며 "증가율은 둔화되겠지만 두 자릿수 성장은 무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큰손'들이 돌아왔다

유통업체들이 '선물 특수'를 실감하는 것은 기업 등 '큰손' 고객들이 돌아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백화점 · 마트 선물세트 매출의 80~90%를 이들 대량구매 고객이 올려주고 있다. 신세계 본점에는 지난 1일까지 선물 대량구매를 상담하러 온 기업 구매 담당자들이 작년 설 시즌의 세 배인 80여명에 달했다. 지난 주말엔 정보기술(IT) 업체 C사와 자동차 수입 업체 D사가 각각 '신안 명품 천일염세트'(8만9000원)와 '한우 후레시 세트'(20만원)를 각각 5000만원과 2000만원어치씩 사가기도 했다. 구자우 신세계 식품담당 상무는 "작년 설에 선물 구매를 포기했던 기업들 중 실적이 호전되면서 선물 구매에 나서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대형마트에는 거래처나 고객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자영업자나 영업직 종사자들이 많았다. 이마트 미아점에서 만난 허승자씨(보험업 · 52)는 "고객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3만~5만원대 생활용품 세트를 살 계획"이라며 "선물을 줄 고객들이 많아져 선물 예산을 작년의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소비자 · 전통시장 '경기회복? 글쎄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만난 고객들 중 상당수는 "경기가 나아진 것을 느낄 수 없다"거나 "물가가 너무 올라 걱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을 찾은 주부 김성옥씨는 "선물 예산을 작년 추석의 3분의 2로 줄였는데 한우세트 값이 많이 올라 부담"이라며 "아무래도 선물 등급을 낮추거나 다른 품목을 찾아야겠다"고 말했다. 2일 이마트 용산점에서 2만3500원짜리 한과세트를 40개 산 송진영 제노덤(의료기기업체) 대표는 "작년에는 1만7000원짜리 100개를 샀는데 이번에 산 2만3500원짜리보다 좋았다"며 "예산은 그대로인데 가격이 올라 선물 개수를 줄였다"고 설명했다.

노량진수산시장,경동시장 등 전통시장은 찬바람이 여전했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수산물을 취급하는 장윤식 D수산 사장은 "새우와 전복을 선물용으로 미리 사가는데 지금까지 50박스씩 2~3건 나간 게 전부여서 작년의 절반 수준"이라고 하소연했다. 경동시장에서 20년째 건어물 장사를 한 E상회 상인은 "설을 앞두고 판매량이 늘긴 했지만 1인당 구매단가가 3만~4만원에서 2만원대로 떨어져 전체 매상은 별 차이가 없다"며 "예전에는 설 보름 전부터 판매량이 크게 늘었는데 요즘은 일주일 전에만 반짝 팔린다"고 설명했다.

송태형/김정은/최진석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