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5분이다. 방송 시간으론 턱없이 짧지만 감성이 깃든 영상과 강한 메시지로 단숨에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정지화면이나 흑백 동영상이 주로 사용된다. 내레이션도 없다. 내용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게 아니라 주제를 던져주고 시청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한다. 그런데도 긴 여운을 남긴다. 1일로 방송 600회를 맞은 5분짜리 EBS 프로그램 '지식채널e' 얘기다.

2005년 9월 5일 '1초'와 '베이비 사인(Baby Sign)'으로 첫 방송을 할 때는 단편적 지식을 전하는 교양 프로그램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현란한 영상이나 말초적 재미를 배제한 가운데 어떤 사실이나 현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보고 생각하게 하는 형식은 낯설면서도 흡인력이 높았다.

예를 들어 '치매'편에선 독성 단백질이 쌓여 하루 수백만개의 뇌세포가 사라지는 질병이란 사실,해마다 늘어나는 치매노인 가출신고,그들을 돌보는 150여만명의 가족들,기억의 파괴와 함께 진행되는 가정 파괴,정부 요양시설 이용 환자는 전체의 5%에 불과하다는 사실 등을 정제된 영상과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곱게 차려 입은 날/이따금 맑은 말씀/"내 언제라도 니 공은 다 갚고 갈끼다"/아내는 늦가을 속에/바람 처럼 울었다'는 시(김세환 '어머니의 치매')를 자막으로 내보내는 식이다. 지식과 감성이 만나면서 5분이란 시간을 상상과 생각의 장으로 바꾼다고 할까.

그동안 월드컵의 이면에 가려진 저개발국 아이들의 눈물,커피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막막한 삶,단순하게 사는 법,세상에서 가장 싼 밥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초기에 과학 아이 사회 자연 문화 삶 등 6개에 불과했던 카테고리는 6명의 PD,15명의 작가를 거치면서 40여개로 늘어났다. 사교육에 짓눌린 초등학생들의 일상을 조명한 '2007,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은 조회수 12만6000여건을 기록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끌었다. 방송 내용을 책으로 정리한 '지식e'시리즈도 56만권이나 팔렸다. 일부 교사는 '지식채널e 연구회'를 만들어 수업자료로 쓰고 있다. 오는 3월 중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릴 예정이다.

방송은 영향력이 큰 만큼이나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막장드라마 막말 선정성 편향성 등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지식채널e'는 거기에서 멀찍이 물러선 채 우리 삶과 사회를 담담하게 비추며 '생각할 거리'를 준다. '수준'이 다르다는 것은 이런 때 쓰는 말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