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해운이 이달 초 한국선주협회 부회장사 자격을 자진 반납했다. 선주협회는 국내 173개 해운사가 가입한 업계의 대표적인 협의기구다. 최고 의결기구는 전 회원사가 참여하는 총회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은 회장단이 모인 이사회에서 큰 방향을 논의하는 만큼 회장단 참여 여부는 회사의 입장을 반영하는 데 무척 중요하다. 국내 5위의 대형선사인 SK해운이 선주협회 일반 회원으로 '백의종군(白衣從軍)'을 결정한 이유는 뭘까.

발단은 지난해 말 SK해운이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동서발전과 10년간 연간 130만t의 유연탄을 운송하는 전용선 계약을 체결한 데서 비롯됐다. 문제는 이 계약이 SK해운을 포함한 국적 선사들의 사전 합의를 어겼다는 것.국적선사들은 동서발전 등 한전 자회사들이 일본선사와 잇따라 장기수송계약을 맺자 앞으로 한전 측의 대량화물 운송권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었다. 일본 발주회사들이 지명입찰제를 통해 대량화물 운송권을 모조리 자국 선사들에 몰아주고 있는 상황에서 한전 측이 그간의 관행을 깨고 외국선사에 물량을 배정한다면 국내 선사들도 '실력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서였다.

하지만 SK해운은 동서발전의 운송계약을 국적 선사들이 계속 보이콧할 경우 외국선사에 운송권을 넘길 명분을 준다는 이유로 합의를 깨고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국적선사들은 '제명'을 거론하며 압박에 나섰다. 결국 SK해운은 부회장사에서 사퇴하고 당분간 국내 발전회사들의 전용선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자체 제재안을 협회에 제출한 끝에 간신히 '제명'을 모면했다.

선주협회는 지난 15일 정기총회를 열고 동아탱커와 대림코퍼레이션을 신규 이사사로 선임했다. SK해운의 사퇴로 공석이 된 부회장사는 따로 선출하지 않고 남겨뒀다. 현재 선주협회는 대한해운이 회장사를 맡고 있으며 한진해운,현대상선,STX팬오션 등 대형선사 7곳이 회장단을 구성하고 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