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운 날씨로 움츠러든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하는 일이 새해 초부터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 비상한 관심이 쏠린 사건들에 대한 잇따른 무죄판결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튀는 판결' 논란이 사법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것 같아 걱정스럽다.

법과 양심이라는 잣대로 내리는 판결이,아귀다툼으로 얽혀 있는 이해충돌의 실타래를 깔끔하게 풀어내고 당사자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승복을 받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가끔은 그렇지 못하면서 그냥 튀기만 하는 판결이 나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른바 튀는 판결이란 국민의 법감정과 괴리돼 쉽게 승복되지 않는 판결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튀는 판결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인 반면,'용기있는 판결'은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권력의 외압에 굴하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내려진 판결,사사로운 이해관계나 여론의 압력에 좌우되지 아니한 판결이 용기있는 판결의 범주에 들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를 따르지 않았지만 사건의 구체적 타당성에 충실한 판결이 용기있는 판결로 칭송되기도 한다. 그와 같은 용기있는 판결이 쌓이고 쌓여 오늘날까지 우리의 사법부를 지켜왔다고 본다.

사법제도는 원래 다양성을 전제로 해 탄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관 한 사람 한 사람을 독립된 판단주체로 자리매김해 두되,심급제를 둬 들쭉날쭉한 판단을 다듬어 나가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러한 다양성은 사법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사법의 다양성은 무제한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들쭉날쭉하되,일정한 한계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개의 법관은 이러한 사법의 다양성에 충실하되,일정한 한계를 넘지 않으려면 독선과 독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균형감각을 단련하는데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보편적인 국민의 법감정이 무엇인지를 읽을 줄 알아야 하고,법의 잣대를 들이댈 사회현상의 드러나지 않은 배경을 간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사법현실은 어떤가. 사법연수원을 나오자마자 법관의 길로 들어서고,그때부터 도제식 훈련이 시작되는 시스템 아래서는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별도의 연수 프로그램이 있다 하더라도 상하간 원활한 의사소통 이외 달리 그들을 단련시킬 방도가 없다고 본다. 경륜 많은 선배와의 의사 소통은 그들이 독단과 독선에 흐르는 것을 막아준다. 그럼에도 이러한 의사소통이 근래 들어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소통 부족은 비단 사법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보지만,도제식 훈련에 크게 의존하는 법관이나 검사들의 경우가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상하간 소통부족의 원인을 여러 측면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사법연수원에서의 성적지상주의를 가장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이다. 극도의 성적 경쟁 속에서 이기심에 똘똘 뭉친 생활에 익숙하다 보면 주변 사람과의 소통에는 서투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소통 부족의 원인으로는 상하간의 불신이다. 사법행정권을 행사한다는 명분으로 개개 법관의 재판업무를 챙기고 독려하는 것 같지만,사실은 선배 자신들의 승진에 유리한 쪽으로 무언가 유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상하간 소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법관 임용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도 필요하겠지만,제도개선을 기다리기 이전에 당장 내부소통을 개선하는데 나서야 한다고 본다. 불신을 받을 소지를 선배들이 먼저 털어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동안 역사적으로 많은 시련을 극복해내며 오늘까지 꿋꿋하게 중심을 잡아온 우리 사법부 아닌가. 튀는 판결이 아닌 용기 있는 판결이 많이 나오는 사법부의 르네상스를 기대해본다.

문영호 <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