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봄 삼성전자 중국 쑤저우 공장.에어컨용 부품인 로터리 컴프레서를 생산하는 이곳에 박근희 삼성 중국본사 사장(삼성전자 중국총괄 사장 겸임 · 57)이 불쑥 찾아왔다. 박 사장은 공장 입구에서 신발을 벗더니 흰양말만 신은 채 공장 안을 성큼 성큼 걸으며 둘러보기 시작했다. 시찰을 마치고 양말 밑바닥을 슬쩍 살핀 그는 "아직 멀었군"이라고 되뇌었다.

박 사장이 양말만 신고 공장을 걸어다닌 이유는 이렇다. 두 달 전 중국으로 부임한 그가 처음 이 공장을 방문했을 때 공장 바닥은 질펀한 기름투성이였다.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는 질문에 제품 제조공정의 특성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 사장은 즉각 "앞으로 공장 안에선 신발을 벗고 흰 양말만 신은 채 근무하라"고 지시했다. "잘못을 고칠 생각은 않고,원래 그런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흰양말을 신고 직접 몇 차례 점검을 한 끝에 그 공장바닥에선 기름때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화장실도 못바꾸며 무슨 혁신이냐"

박 사장이 취임 초기 보여준 '흰양말 사건'은 '하면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중국 각 지역의 삼성공장에 확산시켰다. 혁신의 바람이 일어났고,중국의 삼성공장들은 지난 5년간 대변신을 했다. 중국 쑤저우의 노트북공장은 박 사장 취임 초기인 2005년엔 100만대를 만드는 데 불과했지만,작년 생산량은 600만대로 급증했다.

생산량이 6배 늘어나는 동안 공장엔 라인이 새로 깔린 것도,단 한 평의 증설도 없었다. 생산라인을 셀(cell) 방식으로 바꾸고,부품조달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의 혁신이 가져온 결과다.

"아무리 훌륭한 전략이라도 실천을 통해 경영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헛된 구호일 뿐"이라는 게 박 사장의 지론이다. 그의 혁신노력은 협력업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가 2005년 톈진의 한 협력업체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삼성전자 수준의 품질관리와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돌아가다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곳이 있어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부에 문도 벽도 없이 일렬로 앉아 일을 보는 중국의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그는 협력업체 사장에게 "화장실 하나도 못고치는데 무슨 혁신을 할 수 있느냐"며 그 자리에서 환경개선 약속을 받아냈다.

◆'따거(大兄 · 큰형) 리더십'

그렇다고 박 사장이 직원들을 앞으로만 내모는 최고경영자(CEO)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리더가 범하기 쉬운 실수 중 하나는 아랫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능력이나 경험뿐 아니라 그 직원이 처한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고 CEO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목표를 달성하라고 요구하면 직원 개인이나 조직 모두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본인은 두주불사형이지만 술을 못마시는 부하들에게는 반 잔 정도만 따라준다. "각자가 가진 강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래서 박 사장은 직원들과 어울리는 것에 스스럼이 없다. 윗사람이기 때문에 직원들이 어려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적어도 박 사장 앞에선 기우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와 빠른 두뇌회전에도 사람들이 주눅들지 않는 것은 그의 열린 의사소통 방식 때문이다. 부하직원에게 뭔가를 묻기 전에 먼저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털어놓는다.

그래서 그가 때론 육두문자를 섞어 말을 하지만 그 말을 듣는 부하직원 중 기분나빠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먼저 윗사람과 아랫사람 간의 벽을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반면,부하직원을 야단쳐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정중하게 이야기한다. 그건 어떤 질책보다도 아프다고 중국삼성 직원들은 말한다.

◆작년엔 흑발염색,올핸 탕좡(唐裝)시무식

그의 리더십을 돋보이게 하는 또 다른 것은 솔선수범이다. 작년 시무식 때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보고 중국삼성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새치가 많아 30대 때부터 트레이드마크가 돼버린 백발을 검은색으로 염색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였던 당시는 모든 게 '시계(視界) 제로'였다. "정말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다가 나온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올해는 중국 전통의상인 '탕좡'을 입고 시무식을 했다. "중국 내수시장 공략이 중요한 시점인데,이는 단순히 마케팅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정말 중국을 이해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는 점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ROTC(학군장교)로 임관해 강원도 원통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할때 리더가 솔선수범을 보이고 명확한 지시를 내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배웠다"며 "판단은 신중하게 하되 결행을 할 때는 과감하게 해야 부하들이 머뭇거리지 않는다"는 말은 그가 후배 임원들에게 늘 당부하는 소리다.

◆1조원 이익내는 회사에 '곧 망한다'?

박 사장은 삼성그룹의 핵심인 비서실(후에 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로 바뀌었다가 해체됨)에서 잔뼈가 굵었다. 1978년 삼성SDI(당시 삼성전관)에 입사한 뒤 2005년 초 중국삼성에 부임하기까지 26년 중 절반 이상인 14년을 비서실의 운영팀,재무팀,감사팀(경영진단팀)에서 돌아가며 일했다.

이건희 전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선언하자 그것을 책자로 만들고 전 계열사는 물론 협력업체에까지 전파하는 역할을 맡아 '신경영 전도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경영진단팀장으로 일하던 2002년 상반기 그는 삼성그룹을 발칵 뒤집어놨다. 당시 연간 1조원 가까운 이익을 내며 새로운 캐시카우로 떠오르던 삼성카드를 정기감사한 뒤 "그룹 창설이래 최대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감사보고서를 만들었다.

"비록 지금 연 1조원의 이익을 내고 있지만 양적 팽창을 당장 중단하지 않으면 그룹이 쉽게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감사보고서에 적어 당시 이건희 회장에게 제출했다. 그의 날카로운 안목덕에 그룹차원에서 사전조치가 시행됐고,6개월 후 터진 '카드사태' 때 피해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아버지,등록금 한번만 내주세요"

박 사장은 전형적인 '가난한 수재'였다. 농사짓는 부모님을 도우면서 동생 두 명을 뒷바라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청주상고에 진학했지만,막상 졸업할 때가 되자 대학에 가고 싶었다. 농협에 입사하라는 아버지에게 "첫 등록금만 내주시면 알아서 하겠다"며 사정해 청주대학교에 입학했다.

"땅을 팔아 등록금을 대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은 뭐라 말할 수가 없어요. " 아버지가 삼십 세 넘어 담배를 배우셨다고 30세 이전엔 담배를 피울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 등록금을 벌고,한편으로는 동생들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보내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아침마다 타거나 설익지 않도록 화덕을 떠나지 않고 밥을 지었던 탓에 지금도 식당에 가면 다른 것은 몰라도 밥에 정성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냄새만 맡아도 안다"고 그는 말한다.

◆중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중국삼성

올해로 6년째 삼성그룹의 중국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박 사장은 "한국에서 자식이 삼성그룹에 입사하면 부모들이 좋아하듯이 중국에서도 그런 삼성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삼성 브랜드가 중국사람들로부터 전적인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또 올해부터는 서비스와 금융분야에서 사업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애니콜'로 인정받은 삼성의 고급 이미지를 다른 분야에도 확장,'제2의 삼성'을 중국에서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박 사장은 "제2의 삼성은 중국화된 기업으로서 중국 사회에 공헌하는 회사여야 한다"며 "계열사마다 자매마을을 선정해 지원하는 일심일촌운동이나 시골벽지 소학교 지어주기 운동,백내장 환자들의 개안수술 등 지금하고 있는 사회공헌활동은 물론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중국사람들과 융화되고 중국사회에 기여해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서 사랑받는 기업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