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별 자동차 동호회는 사람의 일생을 압축해 놓은 것과 꼭 닮았다. 새차가 출시되고 2~3년 전성기를 누릴 때가 회원 수가 가장 많다. 이때가 동호회의 20,30대다. 시간이 흘러 새차가 헌차가 되는 어느 시점,동호회에 남은 이들은 임종 순간의 가족처럼 정(情)으로 똘똘 뭉친 회원들뿐이다. 신차가 나오기 전부터 온갖 튜닝 용품을 사놓고 기다리는 이들은 아이를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회원 수 5만3000명을 자랑하는 네이버 '라세티 프리미어 클럽'은 사람의 나이로 치면 새파란 젊은이다. 2008년 9월에 만들어졌다. '라세티 프리미어 1.6'이 출시되기 직전이다. GM대우의 '라프(라세티 프리미어의 별명)'를 타고,타다 보니 반해서 모인 이들이 자연스럽게 온라인을 무대로 모였다. 이제 갓 사회 생활을 시작한 직장 새내기들,자녀 하나를 둔 초보 아빠 등 회원 90% 정도가 남자다.

최연식씨(사진)도 '라프'를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카페가 처음 생길 때 부운영자를 하다가 작년 가을부터 카페 운영을 맡고 있다. "저희 클럽은 상업적인 목적을 배제한 순수 동호회입니다. 물론,공동 구매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회원들 편의를 위한 겁니다. " 그 덕에 라세티 프리미어 클럽은 작년 말 네이버가 매년 선정하는 상위 0.3%의 대표 카페에 선정되기도 했다.

워낙 회원수가 많다 보니 카페 안에도 소규모 모임이 숱하다. 속칭 '번개'라 불리는 모임은 주로 세차장에서 열린다. 시간이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애마'를 깨끗이 닦는 일을 함께 한다. "헤드램프에 점점이 LED 등을 다는 '눈썹 작업' 등 튜닝 얘기도 하고,사람 사는 얘기도 하면서 일종의 친목을 다지는 거죠." 정기 모임은 작년 11월 80대의 라세티 프리미어가 한데 모여 충북 괴산에서 진행했다.

이때 GM대우로부터 와이퍼 등 각종 소모품을 공짜로 얻고,자동차 정비 서비스도 받았다. "자동차 업체에 차종별 동호회를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있을 정도니까 인터넷 동호회의 영향력이 꽤 막강한 편이죠.속된 말로 동호회원들이 들고 일어서면 뒷감당하기가 어렵거든요. "

최씨가 생각하는 라세티 프리미어의 매력은 무엇일까. "처음 봤을 때 강렬한 헤드라이트가 마음에 들었어요. 요즘 차들이 대부분 매끈한 편인데 남성성을 강조한 것도 좋았고요. 회원 대부분이 남자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가 봅니다. "

2.0ℓ 디젤 모델은 회원들 사이에선 거의 신화로 불릴 정도다. "완전히 유럽식이에요. 차가 무거워서 시내 주행 때 연료 효율이 떨어지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고속도로에만 올라서면 괴물로 변합니다. 6단 자동변속기와 디젤 엔진이 결합해 시속 200㎞도 무리없이 거뜬해요. 그랜저랑 똑같이 출발하면 한참 앞설 겁니다. 고개길에선 렉스턴도 제칠 정도로 힘이 좋아요. 특히 코너링은 최강이라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평가받습니다. "

최씨의 첫 차는 쏘나타였다. 차를 버리고 모터사이클을 타다 편의점 사업을 하면서 차가 필요해 라세티 프리미어를 샀다. "현대 · 기아차는 왠지 싫더라고요. 해외에서 싸게 팔고,국내 소비자들한테 돈 벌어가는 게 얄미웠습니다. " 그의 소원은 차는 사라져도 카페는 오랫동안 남는 것이다. "레간자 동호회가 아직도 있더라고요. 우리 카페도 차가 단종된 이후에도 끝까지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