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400번 이상 전시회를 열었어요. 외환위기때 관람객 9만여명이 다녀간 '이중섭'전이 가장 인상 깊었고요. 새해부터는 '국민화가' 박수근을 비롯해 이중섭 · 김환기 · 도상봉 · 장욱진 화백 등 한국 미술의 거장들을 미국 유럽 아시아시장에 적극적으로 알릴겁니다. "

1970년 상업화랑 1호인 '현대화랑'을 개관해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갤러리 현대'의 박명자 회장(67 · 사진)은 3일 기자와 만나 "한국 미술은 우리나라 경제위상이 커진 만큼 탄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2004년 말 대표이사직을 아들(도형태 대표)에게 물려 준 박 회장은 "1970년 개관 첫 기획전 '박수근 소품전'에 박 화백의 1~2호 짜리 유화와 드로잉이 5000~2만원 정도에 출품됐는데 지금은 그 작품이 수억원에 달한다"며 "미술품의 경우 투자 수익과 시간은 비례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림을 보는 탁월한 '안목'과 '신용'을 바탕으로 '화랑하면 갤러리 현대,화상(畵商)으론 박명자'를 꼽을 정도로 40년 동안 우리나라 근 · 현대 미술시장을 주도해 왔다. 박 회장은 이처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안목과 남다른 예지력,두둑한 배짱으로 미술 잡지 '아트프라이스'가 선정한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대표적인 인물' 에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관장에 이어 4년째(2006~2009년) 2위에 올랐다.

그는 최근 화랑 경영은 아들에게 맡겨놓고 '문화 전도사' 역할에 체중을 더 싣고 있다. 박 회장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는 그림 등 문화 상품에 대한 투자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잘 고를 수 있는 눈과 사들인 작품을 글로벌 시장에서 유통 · 관리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우선 오는 4월로 예정된 박수근 화백 서거 45주년 기념전을 앞두고 화집을 영문으로 제작해 글로벌 시장에 배포할 계획이다. 그는 "진정한 문화 전도사는 무엇을 심을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기름진 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며 "지금은 기름진 땅을 만드는 데 '올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 화랑을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예술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

박 회장은 지난 40년간 한국 현대 미술계의 산증인 역할을 해왔다. 한국화랑협회 회장을 지냈고,각종 문화 관련 기관에서 자문을 맡았다. 1973~1988년 미술전문지 '화랑'과 1990년대 '현대미술'을 발행하며 한동안 미술계의 여론을 이끌었다.

"1970년대에 화랑은 이색적인 업종이었습니다. '그림을 팝니다'라는 신종 업종 소개 기사가 나기도 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의 상황에선 새로운 업종이 탄생한 것이지요. 매체를 통해 화가와 컬렉터의 자연스런 만남을 시도했고요. "

박 회장은 오랫동안 침체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술시장에 대한 안타까움도 털어놨다.

"미술은 모든 산업의 기초 학문입니다. 한국 경제의 잠재력이 튼튼해진 만큼 성장 가능성도 큰 시장이고요. 기업과 화가들이 손을 잡으면 상품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시장도 활성화될 겁니다. "

갤러리 현대는 개관 40주년을 맞아 오는 12일부터 한 달간 사간동 갤러리 현대 본관과 신관,강남점 등 전시장 세 곳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스타 작가들 작품을 한데 모은 '2010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에서'전을 연다. 박수근의 1960년대작 '두 여인'을 비롯해 도상봉이 1954년에 그린 정물화,김환기의 1954년작 '답교',이중섭의 1956년작 '가족과 비둘기',백남준의 1999년작 '호랑이는 살아있다' 등 한국 현대미술사에 발자취를 남긴 화가 68명의 그림 140여점이 걸린다. (02)2287-35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