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공(子貢)이 스승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식량을 충분히 마련하고, 병비(兵備)를 튼튼히 하며,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 등 세 가지라고 대답했다. 셋 중 하나를 버리라면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묻자 병비부터 버리라고 했다. 또 하나를 버리라면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엔 식량을 꼽았다. 공자는 "하지만 신뢰만은 결코 버려선 안된다. 백성이 위정자를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서로 믿는 게 정치의 근본이자 나라 발전의 토대란 의미다. 위정자가 신뢰를 받지 못하면서 백성을 부리면 아무리 선의라도 백성은 자신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한다고 '논어'는 갈파한다.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신뢰는 사회적 자본이며 신뢰가 두터울수록 국가경쟁력이 강화된다고 봤다. 신뢰가 높을수록 사회 비용이 감소해 효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교수신문이 2010년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강구연월(康衢煙月 · 번화한 거리에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택한 건 사회 지도층이 요(堯) 임금처럼 신뢰를 토대로 태평성대를 열어갈 책임과 의무를 다해달라는 뜻이라고 한다. 뒤집어 보면 지도층,특히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게다. 청와대가 올해를 상징하는 말로 '일로영일(一勞永逸 · 지금의 노고를 통해 이후 오랫동안 안락을 누림)'을 선정했지만 여야가 지난해처럼 극한 대치로 일관하다가는 자칫 '방기곡경(旁岐曲徑 · 바른 길을 좇아 정당하게 일을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 억지로 함)'으로 회귀하지 말란 법도 없다.

1년 전 캄캄하고 긴 터널로 들어간다고 했으나 모두들 허리띠 졸라매고 우보천리(牛步千里 · 소처럼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씩 걸어 천리길을 감) 하다보니 저만치 빛이 보인다. 하지만 올 한 해도 우리 앞엔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정치권이 대립 구도를 풀고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그래야 경제가 살아나고 국민들 살림살이에도 볕이 든다.

'추운 밤 참아낸 여명을 지켜보다/새벽이 천천히 문 여는 소리 들으면/하루의 모든 시작은 기적이로구나. /지난날 나를 지켜준 마지막 별자리,/환해오는 하늘 향해 먼 길 떠날 때/누구는 하고 싶었던 말 다 하고 가리….'(마종기'기적'중) 평범해 보이는 하루하루가 생각하기에 따라선 천금보다 귀한 기적일 수도 있다. 불신을 툭툭 털어내고 그 기적의 날들을 맞으러 가야할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