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융위기는 만연한 단기주의가 빚어낸 재앙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올해 기업들은 초단기적 대응 외에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년부터 기업들은 다시 장기적 성장을 위한 발전전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도전적 과제를 안고 있다.

기업들의 장기적 성장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가를 꼽으라면 단연 중국이다. 영국의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2010년 세계경제 전망에서 중국에 대한 견해가 다소 엇갈리지만 중국이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고,그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기존의 세계질서를 좌우하던 G7, G8 등이 흔들리면서 G20은 물론이고 G2 G3 G13 등 그 어떤 대안에서도 중국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런 중국을 대상으로 기업들이 새로운 전략 짜기에 부심할 것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은 몇 년 전 한국의 10대 성장동력의 하나로 '중국을 베스트 프렌드(친구)로 삼으라'고 제언한 적이 있다. 그의 말대로면 기업들은 '추격하는 중국'을 전제로 한 전략에서 '베스트 프렌드 중국'을 전제로 한 전략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는지 모른다.

오래 지속되는 프렌드는 단기주의로는 안 된다. 시장의 관점에서 나오는 전략만 갖고는 안 되는 것이 또한 프렌드 관계다. 앞으로 중국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고 보면, 그에 따라 시장전략도 출렁거릴 수밖에 없을 것은 당연하다. 그럴수록 흔들리지 않는,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포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2000년에 시작된 'SK 좡위안방(狀元榜)'은 좋은 사례다. 좡위안방은 지금 중국 고교생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다. 마치 1970년대 우리의 장학퀴즈가 연상될 정도다. 1973년에 시작,올해로 36년째인 장학퀴즈가 중국에 현지화한 것이 SK 좡위안방이다. 중국 고교생들이 자기 지역의 자존심을 걸고 SK 브랜드가 붙은 이 프로그램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 장학퀴즈와 중국 좡위안방 출신들이 서로 교류까지 하고 있다.

SK 좡위안방 출신인 베이징대 학생 궈지아즈양은 "중국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도전의식을 심어주는 SK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한다. '10년 수목(樹木),100년 수인(樹人)'을 말하지만 좡위안방이 10년을 넘어 앞으로 20년, 30년을 가면 이곳을 거쳐 간 학생들이 중국 지도부에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장학퀴즈나 좡위안방은 글로벌 IT(정보기술)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가 대학생들에게 공을 들이는 것보다 한 차원 높은 것이고, 사전적으로 씨를 뿌린다는 의미에서 승자가 된 뒤 펼치는 사후적 잔치와도 그 성격이 확연히 달라 보인다. 고(故) 최종현 회장이 일찍부터 SK 고유의 인재양성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놨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혹자는 이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도 기업의 '장기적 성장전략'으로 해석하는 경제학자들 눈으로 보면 인재에 초점을 맞춘 전략보다 더 좋은 것도 없다. 왔다갔다하는 유행,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한류바람에 의존하기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뿌리에서부터 '베스트 프렌드' 이미지를 심어주면 그 기업 브랜드가 훨씬 강하고 오래갈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