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오나 싶어 30분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

9일 오전 한 평 남짓한 좁은 집 330여채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 뒷골목의 이른바 '동대문 쪽방촌'.골목 어귀에서 서성이고 있던 최영자 할머니(77)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린다.

최 할머니가 기다린 '귀한 손님'은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할머니를 보자마자 덥썩 끌어안았다. "건강해 보이시네요. 작년하고 똑같으세요. " 이 부회장이 인사말을 건네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최 할머니는 이 부회장의 손을 꼭 잡고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4년째 쪽방 찾은 이윤우 삼성 부회장

이 부회장과 최 할머니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부회장은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지하극장에서 500여 쪽방촌 주민을 초청해 개최한 '희망나눔 문화공연'에서 최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이 부회장은 이날 인연으로 연말마다 최 할머니를 찾고 있다.

이 부회장이 이날 준비한 선물은 털장갑과 가죽 털신.그는 최 할머니 손에 장갑을 끼워 주며 "우리 여직원들이 직접 짰다"고 설명했다. 최 할머니는 "작년에 받은 털목도리에 털장갑과 신발까지 더해졌다"며 "이번 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쪽방촌 사람들은 최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어려운 일이 있는 주민들을 방으로 불러 사연을 들어주고 등을 두드려주는 게 최 할머니의 일과라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최 할머니 옆집에 사는 최문식씨(64)는 "삼성 사장님들이 '엄마'가 평소에 착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을 알고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최 할머니와 10여분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150m가량 떨어진 박우수 할아버지(75)의 쪽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할아버지는 동대문 쪽방촌에서 20년을 지낸 터줏대감이다. 이 부회장과 박 할아버지의 만남은 올해가 두 번째다. 이 부회장은 박 할아버지에게 털모자와 털구두를 선물하고 건강을 기원했다. 박 할아버지는 "신경을 써 줘서 너무 고맙다"며 "덕분에 사는 게 힘이 난다"고 말했다.

박 할아버지가 사는 쪽방을 나온 이 부회장은 "지난해 이맘 때 봤던 분들이 모두 건강히 계셔서 다행"이라며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분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주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 CEO들은 '쪽방촌 산타클로스'

삼성 CEO(최고경영자)들은 '쪽방촌 산타클로스'로 불린다. 매년 12월마다 서울 각지의 쪽방촌을 찾아 겨울나기에 필요한 선물을 전달하는 행사를 6년째 이어가고 있어서다.

이날 쪽방 봉사활동에는 이윤우 부회장 외에도 이상대 삼성물산 부회장,김징완 삼성중공업 부회장,이순동 사회봉사단 사장 등 26명의 삼성 계열사 CEO들이 참석했다. 지난해 23명보다 참가 인원이 늘었다. 이들은 2~3명씩 짝을 이뤄 서울 남대문,용산,종로,영등포 등에 산재해 있는 쪽방촌을 찾았다.

부산과 대전,인천 등의 지역은 삼성 계열사 임직원들이 사장단을 대신해 쪽방촌을 방문했다. 이날 서울 지역 3300명을 포함,전국적으로 6000여명의 쪽방촌 사람들이 삼성으로부터 겨울 생필품 상자를 받았다. 재활용이 가능한 밀폐용기에 쌀 5㎏을 비롯해 라면,참치,스팸 등을 골고루 담았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이순동 사장은 "기존 CEO 봉사활동이 1회성 홍보용 행사로 비쳐질 수 있다고 판단해 삼성 사장단이 매년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쪽방 봉사활동'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며 "CEO와 임직원들이 전국 각지에 사랑과 나눔 정신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김나나 동대문쪽방 상담센터 소장은 "경제위기 이후 쪽방촌을 돕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든 반면 쪽방촌 식구들의 숫자는 더 많아졌다"며 "쌀이나 라면과 같은 먹을거리와 겨울용 의류가 특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처럼 쪽방을 도와주는 기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사장단의 '쪽방 봉사활동'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연말 사회공헌 활동에 돌입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금을 기탁하고 계열사별로 독거노인,소년 · 소녀 가장 등을 돕는 행사를 다양하게 열 계획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