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단 한 명만 임용됐어요. "

얼마 전 A대학 불어교육과 학생의 얘기를 듣고 적잖이 놀랐다. 국내 6개 대학 불어교육과에서 해마다 수백명이 졸업하지만 불어 교사 임용은 충북 제천에서 한 명뿐이었다. 그것도 지난 1년이 아니라 10년 동안….

또한 교육대학은 입학만 하면 교사가 되고 정년이 저절로 보장되는 줄 알았지만 저출산 여파로 교대 졸업생 2명 중 1명은 임용이 안 된다. 급기야 교대생들이 동맹파업을 외치고,초등학교 간 통폐합 이야기까지 나오는 판이다.

조훈현,이창호,이세돌로 이어진 한국 바둑은 영원히 세계 최강일 줄 알았다. 하지만 요즘 중국 기사와 맞붙어 한 번 이기면 두 번 지는 처지다. 하긴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을 모르면 '불출' 소리 듣던 게 불과 몇 해 전인데 이제 와인은 막걸리의 인기에 밀리는 형국이다.

이렇듯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꽃이 열흘 못 가고,권력이 10년 못 가듯이.'권불십년(權不十年)'의 덫에서 대형마트도 예외가 아니다. 값 싸고,품질을 믿을 수 있고,쾌적하고,군말 없이 환불 · 교환해주는 대형마트는 외환위기 이후 10여년간 한국인의 소비 패턴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보다 더 경쟁력 있는 유통 업태는 없었고,앞으로도 변함없이 잘 나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올 들어 백화점 기업형슈퍼(SSM) 편의점 온라인몰 등 대부분의 유통 업태가 호조인 반면 대형마트만 매출이 정체 또는 뒷걸음질이다. 군소 대형마트들은 매각설이 끊이지 않고 해마다 30~40개씩 늘던 신규 점포는 올 들어 한 자릿수로 뚝 떨어졌다. 점포 수가 400개를 넘어서 비집고 들어갈 곳이 거의 없다. 신규 점포를 내면 기존 점포와 상권이 겹쳐 '제닭잡기' 싸움이 된다.

'상시 최저가(Everyday Low Price)'라는 '마트의 상식'도 무너지고 있다. 생필품이 SSM이나 온라인몰보다 눈에 띌 만큼 싸지도 않고,품질이 백화점보다 낫지도 않으니 당연한 결과일 듯 싶다. 심지어 온라인몰들은 '마트보다 ○○'이라며 맞짱 뜨자고 덤빈다.

반면 창고형 매장으로 출발한 대형마트는 화려해진 인테리어와 외관만큼이나 고비용 구조로 치닫고 있다. 대형마트의 위기 징후는 지난 추석시즌에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마트 측은 "추석선물 판매에서 참담하게 실패했다"고 실토했다. 이마트뿐 아니라 다른 대형마트들도 사정은 똑같다.

기존 명성에 안주해온 대형마트들은 이제 변신의 기로에 섰다. 1990년대 마이카 붐이 2000년대 대형마트 전성시대를 가져왔지만 지금은 '녹색'의 시대다. 굳이 마트까지 차를 몰고 가지 않아도 핸드카트 끌고 10분만 걸어가면 SSM이 있다. 그런가 하면 안방에서 클릭만 하면 3시간 안에 총알처럼 배달해주는 시대다.

지난 10년간 대형마트가 제공한 소비자 후생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월마트와 까르푸도 국내에선 발을 못 붙였을 만큼 경쟁력도 있었다.

소비자가 대형마트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백화점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인테리어보다는 여전히 '싸고 질 좋은 상품'일 게다. 대형마트들이 납품업체의 팔목을 비틀지 않고는 가격을 낮출 수 없게 됐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정밀진단이 절실한 때다.

오형규 생활경제부 부장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