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찰 물건 원주인에 웃돈받고 즉시 되팔아
'꾼들만의 리그'…일반인은 발붙이기 어려워
현장에는 10여명의 동산 경매 전문가들이 몰려와 있었다. 참가자 중에는 팔뚝에 문신을 새긴 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 눈짓 손짓으로 인사를 나눴다. 이날 경매는 현장에 있는 물건과 경매 목록이 일치하지 않아 유찰됐다.
유찰 결정이 나기가 무섭게 경매 참가자들은 법원 집행관의 뒤를 따라 다음 경매 현장으로 급하게 이동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집행관사무소 집행2부가 강남구 소재 법인 및 개인의 압류 동산을 대상으로 경매를 벌인 것은 모두 7건.오전 10시부터 시작된 경매는 경매 물건이 있는 장소로 순차적으로 옮겨가며 이뤄졌다.
'동산 경매의 대가'로 불리는 A씨에게 다가가 동행을 요청했다. 20년 가까이 서울은 물론 전국 각지의 '돈 되는 경매' 현장을 누볐다는 그는 한동안 경계의 눈빛을 보내다 동행을 허락했다. 그는 "동산 경매는 전문꾼들이나 주먹 꽤나 쓰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서 일반인은 참여가 어렵다"고 동행에 앞서 주의사항을 말했다. A씨와 함께 둘러본 경매 현장은 강남구 관내 3곳.경매 현장을 지켜보면서 그에게서 전해들은 동산 경매 시장은 또 다른 세상으로 느껴졌다.
A씨의 설명에 따르면 동산 경매 전문가들은 대개 팀으로 움직인다. 경력에 따라 차이는 나지만 고수들의 경우 한 달에 7000만~80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그가 전한 '동산 경매에서 돈벌기' 공식은 단순했다. 사무실 집기나 식당 집기를 낙찰받은 뒤 바로 원주인에게 낙찰가보다 높은 가격에 되파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업소용 냉장고를 50만~60만원에 낙찰받아 원소유자에게 100만~200만원에 넘기는 식이다. 원주인은 장사를 계속 해야 하는 탓에 대부분 되산다는 것이다. 대금 지급과 물건 판매가 모두 현금으로 이뤄지는 만큼 거래가 성사되는 동시에 건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수익으로 건진다.
원주인에게 되파는 게 여의치 않으면 단골 재활용센터에 낙찰받은 물건을 처분한다. 유통망을 갖고 있지 않으면 동산 경매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대박은 가끔 골프회원권 경매에서 터진다. 낙찰받아 1억~2억원씩 남기고 파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A씨는 "동산 경매와 부동산 경매를 같이 하고 있지만 수익성만 따지면 경매의 꽃은 역시 동산 경매"라고 말했다.
A씨는 항상 가방에 현금을 챙겨 다닌다. 동산 경매는 현금 거래인 만큼 2억~3억원 정도는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것.
그의 말대로 경매 현장에서 일반 투자자를 만나기는 어려웠다. 동산 경매 현장에 일반투자자나 실수요자는 거의 없었다. 가끔 재활용센터 직원이 눈에 띄는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서로를 '형님''동생'이라 부르며 물품 가격이 높을 경우 조직적으로 경매를 유찰시키기도 한다고 했다.
현장 취재 후 만난 경매 전문가들도 일반인이 동산 경매에 참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부동산 경매는 흔히 말하는 조직이나 전문꾼들이 좌지우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93년 최고 액수를 부른 사람에게 낙찰되는 '호가제'에서 서면으로 가격을 써내는 '입찰제'로 바뀌었다. 하지만 동산 경매는 여전히 현장 호가제 방식을 유지하고 있어 소수 참가자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동산 경매 전문 투자자인 B씨는 "초보자들이 경매 현장에서 가격을 올리는 등 방해하면 욕설을 해 발을 못 붙이게 하기도 한다"고 경매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동산 경매의 불투명한 매각 공고 시스템도 일반인의 참여를 어렵게 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법정에서 이뤄지는 부동산 경매와 달리 동산 경매는 물품이 있는 압류 현장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경매 집행 시간은 법원 집행관이 경매 당일 오전 9시30분께 정한다. 따라서 대법원 경매 홈페이지에는 물건 목록만 올라와 있을 뿐 물건별 경매 시간은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도 차량을 이용해 집행관의 이동 경로를 따라다니며 경매를 하고 있었다. 법원이 동산 경매 물품을 모두 묶어 매각하는 것도 일반 수요자들의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민사집행법은 일괄 매각을 강제하지는 않지만 집행관 대다수는 편의상 일괄 매각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특정 물건만 필요한 일반 수요자가 동산 매각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서울중앙지법 민사집행과 관계자는 "물품을 개별 매각하면 값어치가 떨어지는 물건은 팔리지 않는 부작용이 있는 데다 일괄 경매를 해야 채무자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줘 채무 변제를 독촉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매 전문가들은 "동산 경매가 전문 경매꾼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되면서 소수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며 "일반 수요자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절차를 투명하게 바꿀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
◆동산경매=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로부터 압류한 물건을 법원이 강제집행 절차에 의해 입찰에 부치는 것을 말한다. 법원 집행관이 공고를 통해 주로 압류물건이 있는 장소를 경매장소로 지정한다. 최고 액수를 부른 사람에게 낙찰되는 호가제 방식으로 진행된다. 귀금속 기계 기구 가재도구 등 부동산을 제외한 가치 있는 물건은 모두 입찰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