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만원의 행복
입추,처서가 지나서인지 시원한 바람이 자주 불어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땀을 식히는 연인들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줄을 지어 산행하는 산악회원들로 등산로는 가득했다. 산에서 만난 이들의 표정에서는 힘든 일상의 근심걱정 대신 자신감과 웃음이 가득했다. 집에서 불과 10여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 아름다운 산을 곁에 두고도 지난 10여년 동안 왜 잊고 살았는지 아쉬움이 컸다.
직장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항상 일찍 나가 늦게 퇴근 후 잠만 자는 하숙생처럼 지내다가 오랜만에 집사람과 함께 한 산행은 값진 경험이었다. 아이들의 장래 계획과 우리 부부의 노후 설계,살다보면 부딪치게 마련인 소소한 집안과 가족의 일들에 대해 모처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내 얼굴에도 행복한 미소가 퍼지는 것을 보니 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과 그동안 너무 집안일에 대해 소홀했다는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작은 일에서도 소중한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한 달에 한두 번은 이런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다짐하며 5시간여의 산행을 마쳤다.
산행을 통해 얻은 1차적인 기쁨이 꽃과 나무,맑은 계곡물 등 빼어난 자연환경과의 만남과 부부간의 정을 돈독하게 만들었던 대화였다면,산행 후에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행 중 물과 과일만 먹어 시장기가 도는 터에 마침 눈앞에 산 두부집이 보였다. 두부 한 모에 막걸리 1병을 시켜 아내와 나눠먹으니 요기도 되고 산행 후의 상쾌함과 비교적 긴 산행을 안전하게 마무리했다는 뿌듯함이 함께 어울려 기분이 좋았다. 평소 세종대왕의 애민(愛民)사상을 존경했는데,세종대왕 초상이 그려진 1만원 한 장으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느낀 순간이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귀가길 버스에 올랐는데 운전석 옆 광고판에 파산신청을 부추기는 듯한 광고물이 보였다. 로펌의 판촉활동이라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수수료 수입을 위해 선량한 사람들에게 파산을 권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씁쓸한 기분이었다. 신용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1만원으로 얻을 수 있는 '작은 행복'을 발견하고,하루빨리 신용과 인생이 회복되기를 기원해 본다.
홍성표 신용회복위원회위원장 ccrschairman@ccr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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