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현찰의 흡인력은 강했다.

일본 민주당이 총선에서 일방적으로 대승한 것은 자민당에 대한 국민 혐오가 분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장 현찰을 손에 쥐어주겠다는 거부할 수 없는 '당근'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선거공약의 합리성이나 실현가능 여부를 떠나 자녀수당 월 2만6천엔, 사립고교생 세대 연 12만엔, 출산일시금 인상, 고속도로 무료화, 농어가소득보상제 등 민주당의 현찰 공세가 선거전 초반부터 두루뭉술한 자민당 공약에 비해 유권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퍼주기는 양날의 칼이다.

공약을 무리없이 실천한다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의 앞날이 순탄하겠지만 문제가 생길 경우 치명적이다.

돈을 보고 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상실감은 다음 선거에서 보복으로 돌아갈 것이다.

결국은 재원이 문제다.

민주당은 세금의 낭비제거와 재정의 재배분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으나 재정운영에서도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생기기 마련이다.

◇ 16조8천억엔 어떻게 조달하나
민주당은 선거운동 기간 일본 국민들이 현재 가장 고민하고 있는 자녀교육과 육아 관련 공약에 화력을 집중했다.

도저히 외면할 수 없게 눈에 확 들어오는 내용이다.

자녀수당을 신설해 자녀 1명당 중학교 졸업시까지 올해는 월 1만3천엔(한화 약 16만9천원), 내년부터는 월 2만6천엔(한화 약 33만8천원)을 현금 지급한다.

출산할 경우 지급하는 출산일시금도 10만엔(한화 약 130만원)을 올려 현행 42만엔에서 55만엔을 준다.

또 내년부터 공립고교 수업료를 무상화하고, 사립고교생에게는 가구당 연 12만엔(한화 약 156만원)을, 저소득 가구에는 연 24만엔(312만원)을 지급한다.

여기에 농어촌지역을 겨냥한 농어가 호별소득보상제, 최저보장연금 월 7만엔 이상 지급, 실직자보호를 위해 직업훈련생에게 월 10만엔 지급 등도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년부터 연간 16조8천억엔(한화 약 218조원)이 필요하다.

자녀수당만 5조3천억엔이 들어간다.

일본의 연간 방위비와 비슷하다.

16조8천억엔은 일본 정부예산 207조엔(올해 기준)의 8%, 국내총생산(GDP)의 3.4%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다.

일본의 예산 규모가 크지만 재정운용이 시스템으로 확립된 나라에서 이 정도 자금을 염출한다는 것은 쉽지않다.

하지만 민주당은 재원 조달 방법도 제시했다.

도로 철도 등 대형 공공사업을 중단해 1조3천억엔, 공무원 급여삭감으로 1조1천억엔, 방만한 정부 지출 삭감을 통해 6조1천억엔, 각종 기금과 재정투용자 사업에서 숨어있는 유휴자금인 '매장금' 4조3천억엔, 소득세의 배우자 특별공제 폐지 등 공평과세를 통해 2조7천억엔 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토야마 대표는 공약 이행 자금 확보를 위해 국채를 발행하거나 세금을 올릴 계획이 없다고 선언했다.

재정의 재분배를 통해서만 해결한다는 복안이다.

◇ 부작용 극복이 관건
하토야마의 명운이 걸린 공약이기 때문에 민주당 정권은 이를 무조건 실천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후유증이다.

도로 등 공공사업의 중단이나 예산축소는 해당 지역민의 반발이 예상된다.

공무원의 인건비 삭감이나 정부 산하단체의 각종 보조금 삭감 등도 만만찮은 저항이 따를 것이다.

각종 기금이나 재정투융자특별회계의 매장금을 활용한다고 하지만 이는 설립 목적이나 관련법으로 자금의 운용처가 정해져 있다.

공평과세를 통한 재원확보 방안은 기존 세금 혜택을 폐지하는 것이어서 당사자들의 반발이 예고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일본의 재정 불균형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채발행과 증세 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일본의 국가채무가 이미 위험수위라고 진단했다.

올해 기준으로 816조엔으로 GDP의 174%이며, 내년에는 194%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예산의 국채의존도가 2008년에 30%를 기록했다.

선진국 가운데 최악 수준이다.

예산의 국채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빚이 빚을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일본은 예산 가운데 10%가 넘는 23조엔을 국채 상환이나 이자를 갚는데 썼다.

내년에도 22조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증세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재정이 한계상황이기 때문에 증가하는 복지예산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금 인상을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는 하토야마 정권의 무덤이 될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복지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나라빚을 늘리거나 향후 4년내에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도쿄연합뉴스) 김종현 특파원 kim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