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단 방남 앞서 우호분위기 조성..정부 반응 주목

북한이 20일 최근 공언한 '육로통행 제한 해제'를 21일부로 이행하겠다고 통보해온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사절단 파견을 앞둔 분위기 조성 차원으로 해석된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10~17일 방북을 시작으로 북한이 남북관계를 풀어가려는 행보를 잇달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조문 사절단의 서울 방문을 남북 당국간 대화 복원의 계기로 적극 활용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2.1조치'해제 택일 배경은 = 북한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마지막 날인 17일 현대측과의 5개항 합의 중 하나로 "남측 인원들의 군사분계선 육로통행과 북측지역체류를 역사적인 10.4선언 정신에 따라 원상대로 회복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했다.

이는 당시 북이 합의한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5개 사항 중 남측과 협의 없이 자기 결정으로 이행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였다.

북한 입장에서는 지난 13일 석방한 억류 근로자 유성진씨에 이어 가지고 있던 대남 유화카드 하나를 또 쓴 셈이다.

일단 북이 통행제한 해제의 발표 시기를 20일로 택한 것은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 비서와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등 고위급 조문사절단의 21일 서울 방문을 앞두고 남한 정부와 민간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게끔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조치에는 핵실험과 북한발 대남 위협으로 나빠진 국내 대북여론을 호전시키려는 의도가 반영돼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우리 정부가 조문사절단 파견을 계기로 대북 접근을 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측면이 없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이 이날 `12.1조치' 해제를 선언한데 대해 "현재 이명박 대통령이나 정부 고위 당국자가 북측 조문단과 대화할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인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자신들을 만나 진지하게 협의할 수 있는 여론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다만 북한의 속내가 개성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백두산 관광 개시 등 자신들에게 현찰을 가져다주는 현대측과의 최근 합의들을 남한 당국의 협조 속에 조속히 이행하는데 그치는 것인지, 진정으로 남북관계를 복원하려는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해 보인다.

◇정부, 북 사절단 만날까 = 이제 관심은 우리 정부의 대응으로 쏠리고 있다.

북한이 보이고 있는 `비둘기 행보'를 놓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북한이 내민 손을 잡느냐 마느냐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선택이 주목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북한 조문단의 1박2일 일정 중 조문 장면만 언론에 공개하고 입.출국 장면과 기타 일정은 공개하지 않기로 한데서 보듯 이번 조문단 방문에 대해 극도로 차분한 기류를 보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취재허용 최소화 방침에 대해 "북측 인사들의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북측 인사들에게 `발언'의 기회가 많이 주어지면 그들의 대남 전술에 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감안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북한의 대남 실세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 인사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남북관계에 대한 의중을 타진할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날려 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만만치 않다.

정부가 이날 북측에 이산가족 상봉 협의를 위한 남북적십자회담 개최를 선 제의하는 등 북한과의 대화채널 복원 및 남북관계 정상화에 의지를 보이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명박 대통령 예방 주선 등 공개행사까지는 아닐지라도 조용하고 실무적인 협의의 기회는 만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빈소 방문 외에 다른 일정은 현재로선 정해진 바 없으며 조문단 측으로부터 요청을 받은 일정도 없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