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15일 국회 본회의장 강경 대치의 수순밟기에 돌입했다.

6월 국회 최대 쟁점인 비정규직법과 미디어법을 놓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여온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반드시 처리', `처리 저지'라는 목표 관철을 위해 본회의장 농성을 개시한 것.
여야의 어색한 `본회의장 동시 농성'은 이날 오전 본회의 전부터 예고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상대당의 본회의장 점거 내지 농성에 맞불을 놓겠다는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고, 전날부터 마치 `수인의 딜레마'와 같은 눈치작전을 전개해왔다.

이날 본회의는 예정시간인 오전 10시를 10분가량 넘겨 팽팽한 긴장감 속에 개의됐다.

지난 4.29 재보선에서 당선된 의원 5명의 선서로 시작된 본회의는 4개 상임위 및 특별위 위원장 선출, 레바논 동명부대 파병기간 연장동의안 처리, 5분 자유발언 등의 순으로 3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쟁점 현안과는 관계없는 안건들이 다뤄진 `원-포인트 본회의'였지만, 여야의 불꽃 튀는 상호견제는 곳곳에서 목격됐다.

의례적으로 진행되는 당선 의원 인사말도 예외는 아니었다.

5년만에 국회로 복귀한 무소속 정동영 의원은 "경제살리기와 무관하고 정치적 파국을 몰고 올 언론법을 처리하지 않는 것도 정치라고 생각한다"며 여당을 향한 포문을 열었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대표연설을 방불케 하는 긴 연설을 통해 현 정권을 비난, 김형오 의장으로부터 "지금은 당선자 인사말 시간으로, 당선된 의원들은 나쁜 관례를 채택해주지 않기를 바란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회 운영위, 교육과학기술위, 예산결산특위, 윤리특위 위원장 선출 이후 일부 새 위원장의 인사말에도 `가시'는 섞여 있었다.

교육과학기술위원장 선출 이전까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위원이었던 이종걸 의원은 "민주주의를 압살할 것이라는 언론악법이..."라며 미디어법을 거론, 한나라당 의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단상에 오르기 앞서 김 의장에게 목례하는 것을 잊었다가 "의장한테 인사했어요"라는 김 의장의 `충고'에 따라 뒤늦게 인사, 긴장감 속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한편 김 의장은 안건들을 상정하기 앞서 현안마다 양보없는 대치를 거듭하는 여야를 싸잡아 비판했다.

김 의장은 "제헌의 아버지들이 지금 국회의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지 정말 두렵다"며 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야의 노력을 강도높게 촉구했다.

이와 함께 동명부대 파병연장 동의안까지 예정된 안건이 모두 처리된 이후 민주당 4명, 한나라당 3명,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민주노동당 각 1명 등 10명의 의원이 5분 자유발언을 신청, 미디어법 처리 여부 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본회의는 이날 낮 1시13분 산회됐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 각 30여명은 본회의장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사실상 본회의장에서 여야 동시 농성에 들어간 셈이다.

양당 원내대표는 지난주 "15일 본회의에서는 합의된 안건만 처리하고 퇴장하자"는 구두약속을 했지만, 의장석을 점거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 때문에 서로 신사협정을 깨뜨린 것이다.

다만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어느 쪽도 `폭력국회'의 부담을 지게 될 의장석 점거를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야 의원들은 본회의장 동시 농성이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멋쩍은 듯 상대당 눈치살피기에 여념이 없었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같이 나가자", "함께 밥이나 먹자"며 서로의 퇴장을 종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이 본회의장에서 나가야 우리도 나갈 것"이라고 말했고, 민주당측은 "한나라당이 철수하면 우리도 철수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국회 주변에선 여야 동시 농성이 계속될 경우 본회의장이 언제든지 아수라장이 될 소지가 있는 것으로 관측한다. 더욱이 6월 국회 폐회일이 다가올수록 전운은 고조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비상대기령을 유지한 채 조 편성을 하는 등 농성 장기화와 의장석 점거에 대비했다.

한나라당은 농성 돌입 후 본회의장 맞은 편 예결위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갖고 50여명씩 3개조로 나눠 이날부터 매일 1개조가 밤샘 농성을 벌이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키로 했다.

원내지도부는 소속 의원들에게 "1시간내에 국회로 올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달라"고 주문했다. 의총 진행중에도 원내부대표들은 본회의장에 남아 민주당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민주당도 잇단 내부 회의를 통해 향후 대책을 논의, 우선 20여명씩 3개조로 나눠 농성을 유지키로 했으며, 한나라당의 의장석 점거가 현실화될 경우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도 분주했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민주당의 국회 등원은 본회의장에 드러눕는 국민 기만 사기극"이라며 "민주당은 상습적인 국회 파괴 행위로 갈등을 조장하는 좀비세력으로, 본회의장에서 철수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한나라당의 기습적인 날치기 처리가 예상되기 때문에 본회의장에 있는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기습적 날치기 처리를 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선언을 하면 언제든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범현 강병철 장하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