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에는 TV,냉장고,에어컨,세탁기 등 주요 사업에서 모두 약진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점유율입니다. "

최지성 삼성전자 완제품(DMC) 사장의 지난 1일 CEO 메시지 중 한 대목이다. 이날 메시지 동영상은 평소의 두 배가 넘는 10분 길이였다. 상반기에 실적이 좋았던 사업들을 일일이 열거하다 보니 메시지가 길어졌다는 게 삼성전자 측 설명이다.

◆마케팅 컴퍼니의 힘

이날 메시지에는 '마케팅 컴퍼니'를 지향하는 최지성식 리더십의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회사 관계자는 "과거 삼성전자에서 가장 우선시한 관심사는 '개발'이었지만 최근에는 '마케팅'과 '시장점유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며 "기술이 부족해 매출이 신통치 않다는 얘기는 더 이상 핑계가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최 사장의 경영 스타일은 LED(발광다이오드) TV 프로젝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리더가 만들어 놓은 시장에 뛰어들어 신속하고 공격적인 투자로 선두를 따라잡는 기존 삼성식 전략을 뒤집은 첫 사례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삼성전자는 LED를 광원으로 사용한 LCD TV라는 뜻의 'LED LCD TV' 명칭을 'LED TV'로 통일하고 TV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는 내용을 담은 마케팅 캠페인을 전 세계적으로 진행,'삼성전자=LED TV'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최지성식 마케팅 컴퍼니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지난달 출시한 전략 휴대폰 '제트'다. 삼성전자는 휴대폰 딜러들 및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전 마케팅과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글로벌 제품 발표회를 통해 제품이 나오기 전 200만대의 선(先)주문을 따냈다.

◆완제품 부문이 경기침체 버팀목

삼성전자는 글로벌 경기 침체를 큰 타격 없이 이겨내고 있다. 삼성 안팎에서는 최 사장의 '마케팅 드라이브'를 불황 극복의 일등공신으로 평가한다. 그가 이끄는 완제품 부문의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지난 1분기에는 정보통신(휴대폰)과 디지털미디어(TV) 부문의 영업이익이 각각 1조1200억원(이하 글로벌 연결 기준)과 3800억원에 달했다.

2분기에도 완제품 부문의 약진은 계속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6일 2분기 영업이익 추정치가 2조2000억~2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이 중 완제품 부문이 1조6000억~1조7000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최 사장 취임 이후 '삼성전자는 반도체 기업'이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졌다"며 "반도체-LCD-휴대폰-TV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구축하는 데 최 사장이 큰 기여를 했다는 게 회사 안팎의 중평"이라고 말했다.

'하이엔드'와 '로엔드'의 조화

최 사장은 이공계 출신 최고경영자(CEO)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는 삼성전자에서 보기 드문 인문사회계(서울대 무역학과) 출신 CEO다. 업계에서는 그의 경영 스타일이 전임자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이유를 인문계 출신 특유의 유연성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는 정보통신총괄(정보통신 부문의 조직개편 전 명칭) 사장 시절에도 "기술만 갖고는 1위가 될 수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당시 최 사장은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한 하이엔드(고가 제품) 전략만으로는 저가폰으로 제3세계를 평정한 업계 1위 노키아를 꺾을 수 없다고 보고 하이엔드와 로엔드(저가 제품)를 적절히 섞고 마케팅을 강화하는 쪽으로 글로벌 휴대폰 사업전략을 수정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