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인재가 경영대로 몰리고 있다. 실용학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주요 대학의 법대 폐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국내 경영대의 경쟁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외국 기관들의 평가에서도 비슷한 경제 규모인 다른 나라들의 비즈니스 스쿨보다 뒤처진 것으로 나온다. 경영전문대학원도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다.

그러나 국내 각 대학의 경영대와 경영전문대학원들이 앞다퉈 변신과 개혁에 나서면서 많은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대학 간 치열한 경쟁으로 몇 년 내 세계적 수준의 경영대와 경영전문대학원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대 · 연세대 · 고려대 경영대학장 겸 경영전문대학원장들과 싱가포르국립대 경영대 쿨원트 싱 부학장의 좌담을 통해 국내 경영대 경영전문대학원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업그레이드 전략을 모색했다. 좌담은 지난 24일 프라자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2시간가량 진행됐다.

▼김상철 사회부장=최근 경영대학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박상용 연세대 경영대학장=원래 우수한 인재들은 학부에서 인문학 등 기본 학문을 주로 배워야 한다. 그리고 직장 취직 2~3년 후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게 좋다. 한국 남학생들은 군복무도 마쳐야 하므로 졸업에 6년이 걸린다. 그런 점에서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경영학 전공이 빠른 길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경영학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사회의 국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국내 우수인재들이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 고민이다.

▼쿨원트 싱 싱가포르국립대 경영대 부학장=싱가포르도 비슷하다. 많은 학생들이 공학보다 경영학을 전공하려 한다. 기업들은 효율성을 갖춘 인재를 원한다. 경영학은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데 가장 적합하다. 그만큼 기업은 다시 트레이닝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김 부장=한국의 경영대학들이 우수인재들에게 맞는 교육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보는지.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우수인재를 교육시킬 환경은 충분하다. 우리나라 대학만큼 교수들의 수준이 높은 곳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여러 가지 규제로 인한 제약조건 때문에 대학 스스로 안주해 버린다는 것이고,또 다른 하나는 재원 문제다. 재원만 확충된다면 국내 10개 대학 정도는 세계적 대학이 될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

▼안태식 서울대 경영대학장=앞서 거론됐듯이 동기부여가 잘 돼 있고 능력이 있는 우수인재가 경영대에 들어온다. 이들은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인재이므로 사회적 책임의식과 역할을 강조해서 교육해야 한다. 이런 점이 간과된다면 뛰어난 인재라도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교육 과정에 이를 반영하고 있는지 적어도 현 시점에서 되돌아봐야 한다. 대학원의 경우 학문적 성과가 경쟁력의 기준이 되겠지만,학부차원에서 경영학 교육의 초점은 그야말로 재능과 덕성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 것에 맞춰야 한다.

▼장 학장=규제에 대해선 교육과학기술부 탓을 하지만 실제로는 대학 내부 규제가 더 발목을 잡고 있다. 대학 내 산술적인 평등이 문제다. 단과대학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다. 예컨대 경영대는 치열한 경쟁에 놓여 있고 인문대는 안정적 상황에 처해 있는데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김 부장=싱가포르에서 보는 한국 경영대의 수준은 어떤가.

▼싱 부학장=어려운 질문이다.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로 불리는 대학들과 우리는 오랜 파트너 관계를 가져왔다. 3개 대학의 수준은 매우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현 시점에서 국제화 경쟁력을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다. 한국 대학들의 국제화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김 부장=경영대들은 지금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나.

▼박 학장=문제 의식을 갖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쪽은 말할 것도 없고 홍콩,싱가포르에 비해 5년 정도 뒤처졌다. 속도를 내서 따라잡아야 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재원의 문제도 있지만 돈이 있더라도 이용하는 데 제약이 많다.

▼장 학장=시장 상황에 맞게 싸워야 하는데 내부 시스템에 맞추라고 하니 어려운 점이 많다. 예컨대 경영대 교수의 채용과 보수는 시장이 결정하는데도 다른 단과대와 같은 기준에 따르도록 돼 있는 등 불합리한 점이 많다.

▼박 학장=사립대보다 국립대인 서울대가 겪는 어려움이 더 클 것이다. 서울대 경영대를 분권화 경영체제로 만들어 파일럿 모델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자율과 책임이 같이 가는 경영대학으로 성장해갈 수 있고, 다른 대학들도 이 모델을 따라가는 방식을 취하면 한결 효율적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대가 처한 규제의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안 학장=좋은 아이디어다. 그런 식으로 한번 시도할 수 있길 바란다. 경영대에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할 것이다.

▼김 부장=MBA 하면 국내보다 외국에서 나와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데.

▼장 학장=두 가지다. 먼저 정부에서 그동안 MBA를 제도적으로 허가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내 대학에 MBA과정이 설립된 지 3~4년밖에 되지 않았다. 기업들의 채용 방식 탓도 있다.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채용시장 외에 사회인을 대상으로 하는 제2차 채용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 그래서 MBA 졸업생들의 취업을 위해 추가적으로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사회인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바꾸기 위해 MBA에 가고 이 때문에 MBA가 발달하게 됐다. MBA가 활성화되면 학부 학생을 상대로 인성,리더십,사회적 가치를 유지 발전시키는 교육을 조금 더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기능적인 능력을 학부 학생에게 요구하다 보니 MBA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학부에서는 기형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결과를 낳았다.

▼박 학장=매우 중요한 이야기다. 풀타임(주간) MBA가 활성화되면 우수한 인재들이 학부 때 경영대에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공학이나 인문학으로 골고루 분배되고 학부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직장 경력을 가진 후 MBA에서 더 나은 인재로 발전한다. 정부와 재계가 풀타임 MBA가 정착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김 부장=한국의 경영대학들이 국제화에서 뒤처졌다는 비판이 있다.

▼싱 부학장=지금 한국 경영대 사이에서 국제화는 가장 중요한 이슈이고 다음 단계를 밟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은 모든 것을 매우 빠른 속도로 학습하고 발전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같은 방식을 경영대의 국제화에 적용할 수 있다. 무엇이 경영대의 국제화 모델인지는 분명하다. 모든 세계 톱 경영대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경영대는 첫째 연구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둘째는 수준급 MBA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만을 위한 MBA는 의미가 없다. 외국 학생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MBA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

▼박 학장=대학을 국제화하기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았다. 외국인도 내국인과 같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인 학생과 교수의 수만 늘린다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무엇을 선행해야 할지 잘 생각해야 한다.

▼김 부장=국내에서 세계적 수준의 MBA가 언제쯤 나올 것이라 보는가.

▼장 학장=우리 기업들이 MBA 졸업생 채용시장을 열면 그 후 5년 안에 세계적인 MBA과정이 나올 것이다. 국내 기업들 중 상당수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이들이 MBA 졸업생 채용시장을 열면 한국 학생뿐 아니라 외국의 인재,특히 아시아의 인재들이 국내 MBA에 몰릴 것이다.

▼박 학장=경영대 간 경쟁의 척도를 입학생의 수능 성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MBA시장에서 얼마나 잘하느냐가 기준이 돼야 한다. 재계,학교,교육과학기술부의 3박자가 어울려 변화가 시작되면 5~10년 안에 세계적 MBA가 탄생할 것이다.

▼안 학장=지금도 교육과 연구에 관해서는 세계적 비즈니스 스쿨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이런 것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는 순간 규제도 자율적으로 풀릴 것이고 시장에서 수요가 생기면 모든 조건을 갖추게 된다고 본다.

▼싱 부학장=한국 경영대에 꼭 하고 싶은 말은 규모,수준,야망 등에 비춰 아시아 경영학 발전의 리더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영학은 아직 많이 뒤처져 있고 홍콩은 잠재성이 있지만 규모가 너무 작다. 반면 한국은 진보적이므로 가장 적합하다. 다만 외국에서 언어 문제 때문에 한국에 오기 힘들다는 점을 한국 대학들은 알아야 한다.

정리=이진원 한경비즈니스 기자 zin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