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팔 티셔츠 차림의 캐주얼한 복장. 안경을 낀 모범생 타입의 얼굴. 예상보다도 더 어려보였다. 얼핏 보면 학생으로 착각할 법한 외모다. 1981년생. 20대 슈퍼개미로 이름을 날린 채상묵씨(28)의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채씨는 <한경닷컴>의 끈길진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얼굴이 언론에 알려지기를 원치 않았다. 20대 슈퍼개미라는 명성을 뒤로 하고 인터넷 콘텐츠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얼굴 사진촬영을 극구 거부한 그는 다만 사무실과 그가 일하는 뒷모습만 공개했다.

기자가 채씨를 만난 곳은 서울 역삼동 주택가에 자리잡은 '키위스톤'의 사무실이었다. 키위스톤은 그가 직접 설립한 인터넷 콘텐츠 제작업체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십여명의 직원들이 업무에 한창이었다. 최근 기획중인 그리스·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 제작 프로젝트의 자료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는 "그 동안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정말 새로운 콘텐츠를 준비중"이라며 게임 등 콘텐츠 시장에서 성공하겠다는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채상묵씨는 2008년 1월 소액주주 모임 대표로 경영참여를 선언하면서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코스닥 상장 게임업체 액토즈소프트 지분 5.0%(45만4063주)를 보유했다고 금융감독원에 신고하면서 시장의 관심을 모았다.

당시 주식 매수대금이 35억8700만원(주당 7900원)이었고, 친인척과 지인 등 특별관계자외에 채씨가 직접 보유한 주식은 1.1%(10만5063주)로 8억2900만원이었다.

증시에 지분 5% 이상 보유를 신고한 개인들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채씨가 주목받은 것은 1981년생(당시 27세)이라는 젊은 나이와 인터넷·소프트웨어 콘텐츠 업체 대표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채씨는 게임과 인터넷업계에 대한 전문적인 소견을 바탕으로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모아 주주권익을 찾겠다며 나섰다.

◆액토즈소프트 소액주주 활동으로 이름 알려

사실 그가 액토즈소프트 지분을 사들인 때는 2008년 1월보다 훨씬 전이었다. 액토즈소프트 주가가 바닥을 기던 2006년부터 조금씩 매수해왔다.

"단순히 투자목적을 위해 사들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중국과 국내 기업간의 지식재산권 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국내기업에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의도도 담겨있었습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당시 액토즈소프트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액토즈소프트는 게임업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액토즈소프트와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액토즈소프트가 지분 40%를 투자한 회사)가 저작권을 공동보유한 다중접속 온라인 역할수행게임(MMORPG) '미르의 전설'이 2001년 중국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자 중국의 인터넷업체 샨다가 이를 표절해 '전기세계'라는 게임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액토즈소프트와 위메이드는 샨다측을 상대로 지식재산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소송 과정 중이던 2004년 샨다가 저작권을 갖고 있는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해버렸다.

하지만 샨다와 위메이드와의 소송분쟁은 끝나지 않았고, 위메이드의 2대주주인 액토즈소프트와의 갈등도 끊이지 않았다.

"샨다가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한 것은 말하자면 표절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 셈입니다. 지식재산권 보호가 안된다면 콘텐츠 사업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인데 이런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면 안되지요. 액토즈소프트 경영진도 샨다측과 싸우겠다는 의지가 있었으므로 내가 일정 지분을 확보해 주주로서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채씨는 당시 한국과 중국간의 지식재산권 분쟁에서 주주로서 액토즈소프트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분쟁은 액토즈소프트가 2007년 위메이드 지분 40%를 위메이드에 전량 처분하면서 종결을 맞게 된다. 지분 처분과 함께 샨다와 액토즈소프트, 위메이드는 서로의 '미르의 전설'과 '전기세계' 저작권을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이때 지분 처분 가격이 시장 평가액에 훨씬 못 미쳤기 때문에 저작권 합의에 따른 보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채씨는 이에 대해 아직까지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다. 지식재산권 분쟁이 해결되고 자금이 들어오니 자연히 액토즈소프트의 실적은 개선됐지만, 합의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활동은 지식재산권에 대한 분쟁이 종결된 다음에도 꾸준히 계속됐다.


2008년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계속 모았다. 현재 그가 갖고 있는 액토즈소프트 지분은 특별관계자 21명을 포함해 8.0%(71만9654주)이다. 이중 채씨가 직접 보유하고 있는 지분도 1.2%(11만4120주)로 늘었다.


지난 10일 액토즈소프트의 종가(2만9850원)를 기준으로 채씨의 지분에 대한 평가액은 34억600만원에 달한다. 2008년 1월 8억2900만원을 투자했으니 1년 6개월만에 8억여원을 34억여원으로 불린 셈이다. 채씨는 액토즈소프트이외의 자산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채씨는 이 지분을 갖고 액토즈소프트와 최대주주인 샨다측에 기업투명성 확보와 기업구조 변화를 요구하는 등의 제안을 해왔다.


아쉽게도 당시 그가 요구했던 외부감사 등의 의견은 주주총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채씨는 경영진에 콘텐츠 개발 제안 등의 의견을 제시하며 꾸준히 소액주주 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게임 비즈니스는 크게 소니웨이와 닌텐도웨이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기술의 진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쪽이 소니고, 재미와 대중화를 꾀하는 쪽은 닌텐도죠. 온라인 게임에 이를 적용할 때 소니웨이의 한 축이 엔씨소프트라고 하면, 닌텐도웨이의 한 축은 액토즈소프트라고 생각합니다."


채씨는 장기적으로 액토즈소프트가 엔씨소프트만큼 클 수 있는 비전이 있다고 판단한다.


그는 "개발을 총괄하는 노상준 액토즈소프트 부사장과 논의를 해보고 개발진과 회사의 철학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며 "올해 하반기에 액토즈소프트에서 출시할 '오즈페스티벌', '엑스업' 등의 게임은 이를 분명히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책과 동아리 활동으로 지식 쌓아


채씨의 이력만을 살펴보면 경영과 투자쪽과는 거리가 멀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진다. 그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해 연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민대 비즈니스IT대학원에서 센서네트워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문학도인 그가 투자 철학을 갖게 된 계기는 책이었다. 채씨는 한 분야에 집중하면 끈질기게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그는 대학생 때 철저하게 전문서적을 독파하며 투자 지식을 익혔다.


"웬만큼 알려진 경영과 투자 서적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그중엔 워런 버핏, 피터 린치, 조지 소로스 등 유명한 투자자들에 대한 책과 경영과 경제 전문서들이 많았죠. 6개월 동안 읽은 책이 150권을 넘었던 것 같습니다."


채씨는 특히 기업분석을 기초로 한 가치투자를 중요시하며 연구했다.


책으로 기본 지식을 쌓은 채씨는 연세대학교 투자동아리인 'YIG'에서 활동했다. 2003년 시작된 YIG는 기업의 가치를 분석하는 가치투자법으로 유명한 투자동아리였다. 이 때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한 동기들 중 상당수가 금융관련업계에 진출해 지금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는 M&A 부티크와 투자전문가 집단에서 일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며 차익을 챙기고, 부실기업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내다파는 소위 '작전'이나 '하이에나'식 M&A 사례들을 보고 이것은 내가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곧 그만두고 말았다.


그 후에는 직접 자신의 돈을 굴려 투자를 했다.


물론 당시 학생이었던 채씨에게 목돈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낮은 이율과 긴 상환기간을 가진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을 이용해 종잣돈을 마련했고, 이를 불려 졸업할 때쯤에는 억대의 돈을 손에 쥐게 됐다.


그가 초창기 주로 투자했던 업종은 자동차주다. 2003~2005년 정도까지 현대차그룹주를 비롯해 자동차부품주 등을 사들이며 수익률을 높였다.


"자동차는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산업이기도 했고, 주식을 연구하다보니 해외경기, 원자재, 소재 등 종합적으로 알아야 하는 업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업황도 좋아보였기에 중점적으로 투자해 돈을 벌었죠."


◆적립식 펀드처럼 주식에 투자하는 '정액매입법'

이쯤 되면 채상묵씨의 투자법이 궁금하다.


그는 어떤 종목에 투자해서 얼마를 벌었는 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나 자신은 철저한 '가치투자가'라고 소개했다. 데이트레이더가 아니라 가치주에 대해 중장기 투자를 한다는 이야기다. 벤처캐피털업체 두 곳도 직접 운영하고 있는 그이기에 어떤 기업에 투자할 때는 기술력, 수익구조, 자금력, 시장상황, 경영진의 평판, 심지어 최고경영자의 관상까지도 철저히 조사한다.


"주식시장에는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단기적인 주가 흐름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장기 주가는 결국 실질적인 회사의 가치를 반영하게 되죠."


정보가 부족한 개인들이 기업가치를 판단할 때 유용한 것이 바로 재무제표를 분석하는 것이다. 기업의 가치를 먼저 파악해야 적절한 가격도 나오기 때문이다. 상장사라면 공시를 통해 누구나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돼 있는 재무제표는 기업 가치평가의 보고(寶庫)라는 이야기다.


"투자를 시작하기 전에 국내 상장사의 50%쯤 되는 회사들의 재무제표를 모조리 찾아봤어요. 그것도 한분기 수준이 아니라 지난 3년간의 자료를 전부 살펴봤죠. 이렇게 하니 150~200개 정도 눈여겨볼 만한 종목이 발견되더라고요."


그는 그렇게 흐름을 살피다보면 회사의 적정가치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주당 얼마짜리다, 이런 게 감이 오는 거죠.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근본적인 기업가치를 해치는 게 아닌데도 일시적인 이슈로 주가가 떨어질 때 주식을 매수합니다."


채씨는 재무제표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회사의 자산, 부채, 비용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자산수준보다 시가총액이 낮거나 비슷한 회사가 싸고 좋은 회사라고 설명했다.


부채도 적을수록 좋지만, 부채의 성격도 중요하다. 신규사업을 벌이거나 투자 목적으로 부채를 늘렸는데 성공 가능성이 크다면 좋은 부채다. 이런 회사는 다소 부채가 있더라고 큰 문제는 없다.


그 다음으로는 회사를 유지하는 데 드는 판관비(판매 및 일반관리비)도 살펴봐야 한다. 판관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회사는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 해도 손실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회사가 기부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라"며 "회사가 기부를 한다는 것은 이윤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매출액 및 이익과 관련해서는 1년에 특정시점에 1억을 단숨에 버는 것보다 다달이 1000만원을 버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꾸준한 현금흐름과 영업실적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종목선정 못지 않게 투자방법도 중요하다. 채씨가 강조하는 투자법은 '정액매입법'이다.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같은 종목을 계속 매입하는 것이다. 적립식 펀드에 매달 일정한 금액을 적립하는 것과도 비슷한 방식이다.


그는 "이렇게 주식투자를 하면 혹시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평균 매입가도 함께 하락하기 때문에 수익을 내기가 수월해진다"면서 "이렇게 해서 15% 정도의 수익을 이루었다면 매도하고 다른 종목으로 갈아탄다"고 밝혔다.


다른 종목으로 옮겨갈 때에도 한꺼번에 돈을 모두 쏟아부어서는 안된다. 목돈이 있다면 이 역시 일정 수준으로 나눠서 매수한다.


또 채씨는 "15% 수익이 났다고 해서 갖고 있는 주식을 전부 매도하는 것보다는 투자원금을 뺀 나머지 만큼의 주식(15%)은 남겨두는 것이 좋다"며 "상승세를 탄 주식은 주가가 추가로 더 오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자연히 돈이 모이게 되고 보유중인 종목 수도 늘어날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실 이를 실천하기에는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실제로 직접 정액매입법으로 종목을 사려면, 될 성 부를 종목에 돈을 나눠서 매수하는 것에 인내심이 필요하다. 목표 수익률에 도달했어도 더 오를 것 같은 기대감에 매도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에 채씨는 "개인투자자들이 투자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심리를 이기는 것"이라며 "원칙을 세우면 그대로 따라가는 정신력과 마인드 콘트롤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소스 멀티유즈 콘텐츠사업에도 진출

채상묵씨가 인터넷 콘텐츠업체 '키위스톤'을 설립한 것은 지난 3월이다. 이 회사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사업을 준비중이다.

"최근 엔씨소프트가 '아이온'으로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데요. 게임이나 콘텐츠사업 종사자들이 정말 두팔 들고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 동안 인터넷 콘텐츠시장이 정말 힘들었는데, 엔씨소프트가 성공하면서 '콘텐츠사업으로도 먹고 살 수 있구나' 하는 인식이 생기고 있어요."

최근 국내 게임들이 해외시장에서 선전하면서 콘텐츠에 대한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가 현재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그리스·로마신화를 재구성해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뮤지컬 등 '원소스 멀티유즈'의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주제로 선택한 것은 해외 진출도 염두에 뒀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특히 선진시장에서 보편적으로 먹힐 만한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미 원작 시나리오는 완성했고 만화와 게임 작업이 한참이다. 올해 안에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웹카메라를 이용해 구동카드를 인식한 후 컴퓨터 화면에 3차원(3D)으로 캐릭터를 표현해주는 카드배틀 형식의 게임은 야심작이다.

또 네이버, 다음, 태터툴스 등 모든 블로그 서비스와 연동해 게시물과 댓글을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웹서비스인 '빅플'도 준비중이다.

"한국이 세계시장에서 뭘 해야 먹고 살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도 그런 고민의 연장선상이고요. 돈만 많이 번다고 중요한 게 아니라 의미있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대학 투자동아리에서 시작, 상장사 지분 8%를 보유하고 있는 20대 슈퍼개미 채상묵씨. 이젠 인터넷 콘텐츠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그에게선 한국의 인터넷 게임 콘텐츠 산업을 이끌어가겠다는 자존심이 엿보였다.

한경닷컴 김다운 기자 k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