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경위를 수사중인 경남지방경찰청이 2일 오전 실시한 현장검증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수행했던 이모 경호관이 수차례 울먹여 현장검증이 중간에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이 경호관은 이날 오전 5시35분께 경남지방청 관계자들과 함께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의 노 전 대통령 사저를 출발해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장소인 부엉이바위와 정토원, 호미든 관음성상, 사자바위 등을 돌아보며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무전용 리시버를 귀에 꽂고 점퍼 차림에 흰색 마스크와 회색빛 모자, 등산화를 착용한 이 경호관은 사저를 출발한 직후 봉화산 입구 마늘밭과 고추밭에서 노 전 대통령이 주민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비교적 담담하게 당시의 기억을 진술했다.

그러나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바위에서는 당시의 참담했던 상황이 떠오르는 듯 말을 잇지 못했고 간간이 울먹였다.

특히 이 경호관은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이 발견된 지점인 부엉이바위 아래에 이르러서는 고개를 숙여 한동안 오열하기도 해 경찰 관계자들이 물을 마시게 하며 진정시키기도 했다.

이 경호관은 경찰과 취재진들이 심경을 묻자 "미칠 지경이다. 죽고 싶은 심정이다"며 괴로운 마음을 표현했다.

경찰, 이 경호관 안전에 극도로 신경

0..경찰은 현장 검증하는 과정에서 이 경호관의 안전에 극도로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심부름 보내고 대화를 나누는 등 당시 상황을 설명할 때 경찰관 2명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 경호관의 양 팔을 꽉 잡고 있었다.

또 다른 경찰관들은 바위 바깥쪽에 둘러서 검증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불상사에 대비했다.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이후 이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을 찾기 위해 들렀던 인근 사자바위 위에서 진행된 검증에서도 경찰은 경호관 주변을 둘러쌌다.

문재인 전 실장 등 노 전 대통령측 참관

0...이날 현장검증에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경수 비서관,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 및 노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책임자 등 노 전 대통령측 관계자들이 참관했다.

이들은 사저를 출발한 뒤 3시간여간 진행된 현장검증에서 경찰과 이 경호관이 당시 상황을 조사하는 것을 별말없이 차분히 지켜봤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까지 수시로 사저를 방문해 법률문제 등을 보좌했던 문 전 실장은 간간이 침통한 표정을 짓기도 했으나 경찰의 현장검증을 꼼꼼하게 살폈다.

문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발견된 지점에서는 "추락지점과 충격부분이 어디냐"고 묻는 등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기도 했으나 취재진이 조사과정에서 특별한 문제는 없느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경찰의 조사에 대체로 수긍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호관 대역, 부엉이바위-정토원 2분43초 주파

0...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상황과 최대한 비슷한 조건에서 실시된 이날 현장검증에서는 이 경호관의 대역으로 나선 경찰이 부엉이바위에서 정토원을 다녀오는 시간을 실제로 측정해 눈길을 끌었다.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이 이 경호관에게 정토원에 가서 선진규 원장이 있느냐고 확인하라고 지시했다는 부분에 대해 이 경호관이 247m의 거리를 '3분만에 다녀왔다'고 진술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대역을 시켜 실제 걸리는 시간을 조사했다.

대역을 맡은 경찰은 부엉이바위에서 정토원까지를 전력으로 뛰었고 이 결과 왕복시간은 2분43초 걸린 것으로 확인했다.

경찰은 이 같은 결과로 미뤄 '3분가량 걸린다'는 이 경호관의 진술에 별다른 의문이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장검증에 경찰관 10여명 대역으로 동원

0...이날 현장 검증에는 모두 10여명의 대역이 동원됐다.

창원서부경찰서 소속 남모 경찰관이 노 전 대통령의 대역을 맡았다.

또 노 전 대통령이 봉화산 입구 마늘밭에서 만난 주민과 등산객, 정토원 원장, 호미든 관음성상 주변에서 만난 나물캐는 아주머니 등 10여명의 대역을 경찰관들이 맡아 당시 상황을 재연했다.

대역을 맡은 경찰관들은 이 경호관이 진술하는 말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이 심부름 보내는 장면, 정토원 선 원장이 있는지 확인하는 장면, 호미든 관음성상 주변에서 이 경호관이 등산객과 아주머니를 만나는 장면 등을 재연했다.

현장검증에 다양한 소품.측정기구 등장

0...봉화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날 현장검증에서는 다양한 소품과 측량기구도 등장했다.

경찰은 대역을 맡은 10여명의 경찰관에게 '등산객', '주민', '정토원' 등의 글자가 적힌 헝겊 재질의 역할 표시판을 가슴높이에 부착하도록 배부했다.

또 이 경호관이 목격한 등산객과 아주머니 등이 있었던 위치를 표시하는 노란색 깃발 형태의 증거표식 수십개를 현장에 설치하며 당시 상황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둥근 바퀴가 구르면 거리가 측정되는 '워킹 측량기'와 노란색 줄자 등도 동원해 이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을 수행한 거리와 투신한 이후 노 전 대통령을 찾아 긴박하게 돌아다녔던 거리 등도 자세하게 측정했다.

경찰, 취재진 근접촬영에 민감 반응

0...전직 대통령의 서거경위를 조사하는데 대한 높은 관심으로 이날 봉화산에는 50여명의 취재진이 새벽부터 몰렸다.

취재진은 이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의 대역을 맡은 경찰과 함께 사저를 나서는 순간부터 이 경호관을 중심으로 한 현장검증 상황에 대해 근접취재에 나섰다.

그러나 경찰은 이 경호관이 현장검증에 대한 스트레스도 심한 상태에서 취재진의 근접촬영에 대해 부담감을 느낀다며 수시로 취재진의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봉화산 일대를 이동하며 출입통제선을 계속 설치했고 이 경호관의 모습을 너무 가까운 곳에서 촬영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김해연합뉴스) 김영만 황봉규 기자 ymkim@yna.co.krb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