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증권 매각 비리'관련 공판이 열린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대법정 417호.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대가로 세종캐피탈로부터 정대근 전 농협 회장과 함께 준(準)공무원 신분 상태에서 50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남경우 전 농협사료 대표는 선고에 앞서 이날 최후진술을 했다.

짙은 연두색 수의를 입은 남 전 대표는 피고인석에서 일어서자마자 진술서를 읽기에 앞서 안경을 벗고 솟구쳐 나오는 눈물부터 닦았다. 그는 "처음 농협 입사 당시 선친께서 '농민에게 봉사하라'는 뜻으로 목민심서를 주셨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선친의 뜻대로 공직자로 엄격히 처신해 농협중앙회를 발족시킨 공로로 철탑산업훈장을 받고 존경받는 상사상도 수상했다"며 "그러나 노욕이 문제였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징역살이의 고통보다 지하에 계신 선친의 뜻을 받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욱 슬프다. 농협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는 대목에서는 방청석에 있던 가족들까지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남 전 대표는 또 "오래 모셨던 정 회장님과 법정에서 다투고 사실대로 진술하는 게 괴롭다"며 옆 피고인석에서 역시 수의를 입고 앉아있던 정 전 회장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정 전 회장은 눈을 감은 채 괴로운 표정만을 지어 보였다. 남 전 대표는 "저는 이제 평생 따돌림을 받고 살아야 하며 의지할 사람들은 가족밖에 없다. 선처해주면 여생을 농민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겠다"는 말로 진술을 끝마쳤다.

검찰은 이날 남 전 대표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그나마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자백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는 등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을 참작해준 결과였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르면 1억원 이상 뇌물을 받으면 10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거의 살인죄 처벌 수준이다.

뇌물사건을 전문으로 맡고 있는 김주덕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공무원들은 뇌물죄의 무서움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소도 되지 않았지만,뇌물죄 혐의를 받는 것만으로도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투신 서거했다. "현명한 사람은 청렴이 궁극적으로 이롭다는 것을 안다(知者利廉)"는 목민심서의 한 대목을 이 땅의 모든 공무원들이 곱씹어봐야 할 듯싶다.

임도원 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