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중 최고는 전라도 음식이라고 한다. 전라도에는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기본은 하는 곳들이 지천이다. 그에 비해 경상도 음식은 심심하다. 하지만 맛있는 곳은 확실히 맛있는 곳도 바로 경상도다. 그중에서 내 고향 '통영'은 맛의 도시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은 수산물이 풍부하고 살림이 넉넉해 맛있는 음식이 많다. 봄 기운을 받은 쑥과 하얀 생선살이 어울리는 도다리쑥국,봄 멸치회,메기탕,장어를 요리하고 남은 머리에 시래기와 된장을 넉넉히 넣은 시락국(시래깃국),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멍게비빔밥,오미사꿀빵,그리고 애주가에게는 술값만 계산하면 계속 해산물 안주가 나오는 다찌집 등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지난 주말에는 통영에 가서 오랜만에 충무김밥을 맛봤다. 이 김밥은 50년 전 뚱보할매라는 별명을 가진 이두익 할머니를 비롯한 세 분의 할머니께서 발명한 향토음식이다. 김밥 속에 넣는 재료가 쉽게 상하는 것을 보고 보관기간을 길게 하기 위해 밥과 속재료를 분리한 충무 특유의 김밥이다. 따뜻한 흰 밥과 김이 한데 어우러져 향긋한 김의 향이 입 속에서 감돌다 코끝을 때린다.

하지만 김밥만으로 뭔지 무미건조하다고 느낄 때 멸치젓갈로 담아 잘 익힌 무김치를 배어 물면 프랑스 치즈 향처럼 곰삭은 젓갈 향이 입 안에 퍼진다. 이때 매콤하게 양념을 한 갑오징어무침을 입에 넣으면 세 가지 음식의 어울림이 나는데,가히 환상적이다.

오랜만에 고향에 가면 밤늦게까지 아버지와 밀린 얘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다 아침이 밝아오면 아버지의 오랜 단골집 '만성복국'집에 간다. 작은 졸복을 아끼지 않고 풍족히 넣어 삶아낸 국물이 담백하면서도 시원하고 진해서 해장국으로는 최고다. 40년 전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데려가서 복국에 식초와 다진 양념을 넣고 먹는 법을 가르쳐 주시던 자상한 아버지의 추억이 녹아 있는 음식이다.

개인적으로 고향음식 중 최고는 통영제삿밥이다. 일종의 통영 스타일 비빔밥으로,제사 지낼 때마다 상에 올리는 제사음식 중 가장 중요한 요리였다. 제사가 끝나면 이웃이나 식구들과 나눠 먹었으니 신과 인간이 나눠 먹는 신인공식(神人共食)인 셈이다. 이 비빔밥에는 시금치,애호박,당근,콩나물이 들어간다. 또 통영 바다에서 나는 톳나물,미역,조개를 넣고 끓인 두부국을 넣고 밥을 비벼먹는 것이 특징이다.

이 비빔밥에 옥돔찜,가자미찜,조기찜을 곁들여 먹으면 그 궁합이 일품이다. 나는 어머니가 만든 통영제삿밥을 너무 좋아해서 설날 연휴에는 계속 이것만 먹는다. 통영제삿밥을 맛있게 만들어 조상님은 물론 친지와 가족들을 모두 먹이시는 어머니의 손맛은 위대하다. 고향음식을 생각하면 아버지,어머니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