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군부 입김 크게 작용한 듯.."'민족사업' 간주 못해" 주장폈을 듯

북한이 개성공단 토지사용료, 북한측 노동자들의 저임금 등을 전면 재검토하고 이를 위한 협상을 남측에 요구한 것은 개성공단의 폐쇄 수순을 밟되 그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설사 협상이 이뤄지더라도 현실적으로 타결 전망은 극히 낮고 개성공단의 불안정성만 부각돼 남측 기업들의 개성공단 투자 의욕이 사라질 것인 만큼 개성공단은 남북 어느 한쪽 당국의 '폐쇄' 결정이 없더라도 고사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이 점을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면서도 남한 기업들에 개성공단의 가장 큰 메리트인 저임금 혜택 철회 등 초강수를 둔 셈이다.

북한이 "특혜조치의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고 나선 배경에 대해선 아직 알려진 게 없다.우리 정부는 개성접촉에서 북측이 개성공단에 부여한 특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하면서도 북측이 제시한 그 이유에 대해선 입을 다물어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남북 당국관계의 악화 과정과 북한이 그동안 펴온 주장들에 비춰 북측은 이번 접촉에서 현 남북관계 상황을 지적하면서 개성공단 사업을 더 이상 '민족사업'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을 가능성이 있다.

북측은 이명박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지 않고 부정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온 만큼 두 선언에 기반한 개성공단 사업도 이른바 '우리민족끼리' 사업에 따른 특혜 대상이 될 수 없고 일반 국가간 엄밀한 타산에 따른 사업으로 간주하겠다는 논리를 폈을 수 있다.

개성공단 사업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6.15선언을 기반으로 시작됐고, 특히 2007년 남북정상회담 후 발표된 10.4선언에는 "남과 북은 개성공업지구 1단계 건설을 빠른 시일 안에 완공하고 2단계 개발에 착수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2단계 개발 사업은 현재 추진되지 않고 있으며, 2007년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북측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남측에서 기숙사를 지어주기로 합의한 사안도 진척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이번 접촉에서 이러한 점들을 남측의 `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자신들도 과거의 합의에 구속되지 않고 개성공단에 부여해온 각종 특혜 조치를 전면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또 최근 한반도 정세를 거론하면서 남한이 북한에 대결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남측에 '전면 대결태세'에 들어갔으므로 개성공단을 과거처럼 운영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을 가능성도 있다.

북측은 자신들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해 남측이 미국, 일본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강경대응을 추진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참여를 결정한 점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대북 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것 등을 "대결적 자세"의 사례로 들었을 수도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PSI는 간략하게 언급된 것으로 안다"고 말해 북한이 PSI 문제에 대한 기본입장을 밝혔음을 시사했다.

개성공단에 대한 북한의 이러한 초강경 조치에는 특히 한반도 정세가 급랭하는 가운데 대남 정책집행에서 전면에 나선 북한의 군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총참모부 대변인은 지난 18일 남한이 PSI에 전면참여하면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 경고를 거듭 하는 가운데 6자회담에 대해 "우리 군대는 애초부터 6자회담에 아무런 기대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북한 군부는 마찬가지로 개성공단 사업과 남북 철도연결 사업 등에 '애초부터'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4월 방북한 임동원 당시 대통령 특사가 경의선.동해선을 조속 연결할 것을 거듭 종용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리명수 북한군 작전국장을 불러 지시하면서도 "군부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농담조로 말하기도 했었다.

따라서 최근 김 위원장의 와병 이후 북한이 보수회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북한 군부가 정체된 개성공단 사업에 문제를 제기하고 재검토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개성공단은 북한 군부 입장에서 자본주의 문화와 병폐를 퍼뜨려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존재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 일각에서는 개성공단 특혜 재검토를 위한 협상을 하자는 북한의 요구를 남측과 대화 구실을 만들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고립에 빠진 상황에서 돌파구 마련을 위해 개성공단 특혜 재검토 및 협상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고위 당국자는 "대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해 북한의 개성공단 협상 요구를 북한과 대화 기회로 삼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이 개성공단에 부여했던 특혜를 지속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또 남측 기업들이 저임금 등의 매력이 없는 개성공단에 들어갈 까닭이 없는 상황에서 과연 남북간 협상이 어느 정도나 의미있게 진행되고 실효성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