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재혼 후 은퇴설 딛고 14집 발표

청담동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난 이선희(45)는 통기타를 치고 있었다.

4년 전 13집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도 그 자리, 그 모습이었다.

귀밑을 살짝 덮는 길이의 커트 머리도, 동그란 안경도. "최신 머리 스타일로 변화를 주는데 나는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는 작은 음폭의 찰랑한 목소리도 변함없었다.

그는 2006년 재혼 후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홈페이지에 결혼 소식을 전하고 갑작스럽게 떠났기 때문에 은퇴설이 돌았다.

그러나 그는 2년 반 만에 돌아와 10곡의 자작곡과 18곡의 히트곡으로 채운 14집 '사랑아…'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귀국했죠. 어디에도 은퇴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사적인 이유인데다, 밖으로 드러내는 성향도 아니니 인터뷰할 필요도 못 느꼈죠. 하지만 팬들에게는 알리고 싶었어요. 공부하고 싶고, 음악도 듣고 싶고, 언젠가 제 품을 떠날 딸 양원이와 시간도 갖고 싶다고요."

어학 코스를 밟은 뒤, 일리노이주 파크랜드 칼리지에 입학해 2년여간 공부했다.

오전 9시~오후 3시, 오후 6시~9시 음악, 미술 등의 강의를 들었다.

틈틈이 클래식, 뮤지컬 등의 공연을 보며 그 와중에도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 쓰는 작업을 놓지 않았다.

양원이는 뉴욕에서 학교를 다녀 주말마다 만났다.

그는 새 음반을 작업할 때마다 느끼는 건 "가수는 새로우면서 새롭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자기 색깔이 강한 가수일수록 그 색깔에 빠져서도, 새롭고 파격적이어도 안돼요. 저도 그간 충전하며 느낀 것들이 기존의 내 색깔과 같으면서 새로울 수 있을까 고민됐죠. 대중의 음악 평가는 2차적인 문제였어요."

13집 '사춘기' 이후 시간이 흘러 14집은 사랑이 주제다.

창법은 정갈하고 절제됐다.

곧은 직선처럼 시원하고 날렵하게 뽑아내던 음색 대신 소리가 편안하고 너그러워졌다.

"전곡이 사랑 테마인 건 다소 의외"라고 하자 그는 "감정을 잘 컨트롤 하는데 아직도 꿈을 꾸니 그런 면에서는 철이 없나보다"며 "이 노래들은 50대, 60대가 돼서 부르면 더 멋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저와 비슷한 또래 여성들과 얘기하면 제가 여자라서 그런지 '사랑이 뭐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그런데 그게 없으면 밋밋하다'고들 말하죠. 이런 얘기를 하며 만들어진 게 타이틀곡 '사랑아...'예요. 몰입해서 했는데 다 채워진 것 같은데 허전한 것. 사랑과 이별은 곁에 두고 싶은 벗이죠."

수록곡 '사랑 그 자체가 좋더라'는 '사랑은 나도 해봤는데 할 때 좋더라'는 생각에서 썼다.

'시작할 수 있을까?...사랑을'은 지금의 남편을 만날 무렵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던 자신의 얘기를 담았다.

'유 투(Yoo Too)'는 래퍼 타이거JK와 호흡을 맞췄다.

그는 "뭔가를 좋아서 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더라"며 "음악 덕택에 타이거JK와 공유하는 세계가 한층 넓어졌다"고 말했다.

딸 양원이를 위해 만든 '너의 길'은 자녀교육에 대한 그만의 신념이 담겨있다.

딸에게 전하는 메시지이지만 자신을 다독이는 얘기이기도 하다.

"삶 자체가 장거리잖아요. 핵심은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긴 만큼 당연히 실수할 수 있다'는 거죠. 실수를 했거나 자신보다 잘난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을 때, 자신이 무너지는 어떤 순간이 와도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사랑하라는 거죠."

그는 "어느 순간, 꺾이지 않을 것 같았던 내 인기도, 젊음도 가더라"며 "가면 세상이 끝날 것 같은데 나에게는 또 다른 지혜의 길이 열리더라. 젊음이 갖지 않은 연륜있는 음악의 길"이라고 웃었다.

"제가 쓰고 싶은 걸 써냈을 뿐이에요. 사실 저는 연예인 같지 않은 연예인이죠. 가끔 다른 연예인들을 보면서 '나는 무슨 끼가 있어 연예인이 됐을까'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노래 부르는 순간 알죠. '쏟아내도 다시 채워져 뽑아낼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있구나'라고. '그래서 연예인이 됐구나'라고."

올해 이선희는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4월1~5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콘서트를 마련한다.

그는 1984년 'J에게'로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 순간의 얘기를 꺼내며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많았지만 힘들었던만큼 주어진 선물은 컸고,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며 잘 걸어왔다고 했다.

"라디오로 열린 강변가요제 예선 통과를 했는데 결선이 TV로 방송된다는 거예요. 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큰일 나니 동네 미용실에서 파마를 했죠. 뒤늦게 소식을 접한 아버지가 격려하시며 대신 '동생들이 연예계 생활에 물 들지 않도록 하겠다, 연예계에서 나쁜 길로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셨죠."

많은 것을 이뤄낸 그에게 가수로서의 바람이 아직 더 남아있을까.

그는 "음색이 변하거나, 힘이 달리는 건 어쩔 수 없다"며 "하지만 내가 노래를 부를 때 기술적으로 부르거나, 밋밋하게 습관에 의해 노래하는 날이 오면 어떡하나 고민한다. 그런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또 지금의 남편에 대해서는 "여느 부부가 지내는 것처럼 편하게 지낸다"며 "성격이 그래선지 남편, 딸 아이가 노출되는 건 여전히 꺼려진다"고 말을 아꼈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