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때는 부당한 '가이드'에 저항 못해

지난 1월 톱스타 전지현의 휴대전화가 소속사 관계자들에 의해 불법복제된 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줬다.

연예인의 사생활이 소속사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은 지난달 검찰에 송치됐고 전지현의 소속사 관계자 3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예인이 소속사로부터 술 접대, 잠자리를 강요받았다는 진술이 나와 한층 더 큰 충격을 주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7일 자살한 고(故) 장자연이 남긴 것으로 알려진 문서에는 그가 소속사로부터 골프ㆍ룸살롱 접대, 잠자리 강요와 구타, 협박에 시달렸다고 적혀 있다.

이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엔터테인먼트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거나 '과거형'으로 거론됐던 연예계의 비리가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지현의 휴대전화 복제나 장자연에 대한 성상납 강요는 엄연히 범죄 행위다.

대부분의 연예인은 소속사가 있다.

연예인은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차량이나 코디네이터 등을 소속사로부터 지원받고, 캐스팅에 도움을 받는 대신 수익의 일정 부분을 소속사와 나눠 갖는다.

계약기간은 대개 2~3년이며, 신인의 경우는 5년까지도 이어진다.

현재 국내에는 수백 개의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난립해 있다.

이 중 대형사는 싸이더스HQ, 예당, 나무엑터스, 웰메이드, SM엔터테인먼트, 엠넷미디어, BOF 등 10여 곳 정도이며, 중견사까지 포함해도 70-80곳을 넘지 않는다.

그 외에는 신인 혹은 연기자 지망생 한두 명만 데리고 영업하는 군소업체가 대부분이다.

이때문에 연예계에서는 자고나면 매니지먼트 회사가 하나씩 생겨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연예인은 일단 전속계약을 하게되면 소속사의 '가이드'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문제는 그 '가이드'가 어디까지냐는 것이다.

소속사는 계약 기간 내에 최대한의 수익을 내기 위해 연예인의 캐스팅을 주선하고, 연예인을 이용한 각종 수익 사업을 고안해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오디션 등 정상적인 루트를 밟지 않고 음성적인 거래를 통해 연예인을 키우려다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장자연이 남긴 문서에서 언급한 술시중이나 잠자리 강요 등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연예인 입장에서는 이를 거부할 수는 없을까.

아무리 계약된 관계라고 해도 부당한 대우를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 주연급 연기자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연예인의 발언권도 강해지지만 신인 시절에는 대부분 소속사의 가이드를 따르게 된다.

인맥도 없고 힘도 없는 신인이 성장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원칙만 강조하면 '싸가지 없다', '건방지다'는 소리를 듣기 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연기자는 "어느 정도 밥벌이를 하기 전까지는 연예인으로서 의상비 등 들여야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면서 "소속사가 그런 것을 해주는 대가로 간혹 원치 않는 술자리를 주선해도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소속 연예인의 계약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사생활을 촬영한 비디오로 협박하는 일은 이미 몇 차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한 여배우는 "매니저와 배우는 늘 붙어다니며 성공을 위해 함께 애쓰는 입장이다보니 사적으로 감정을 나누기도 한다.

실제로 매니저와 결혼하는 연예인들도 있지 않느냐"라며 "그런데 나쁜 매니저의 경우는 그것을 이용해 연기자의 신변을 구속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속칭 '노예계약서'라고 불리는 연예기획사의 연예인 전속계약 관행에 시정조치를 내렸다.

홍보활동 강제 및 무상 출연조항, 과도한 사생활 침해, 일방적으로 불리한 수익배분 조항 등 연예기획사와 연예인이 체결한 불공정계약에 대해 수정 또는 삭제토록 조치한 것이다.

그때 공정위가 연예제작자협회와 연예매니지먼트협회를 통해 시정조치 내역을 통보하고 불공정 조항을 자진 시정토록 한 곳이 346곳에 달했다.

연예매니지먼트협회 측은 당시 "시정조치는 겸허하게 받아들이지만 이번 발표로 업계가 전체적으로 매도될까 우려스럽다"며 "매니지먼트업계가 산업화, 투명화하면서 과거의 악습들은 거의 사라졌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올들어 전지현에 이어 장자연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매니지먼트업계에 대한 불신은 깊어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