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2일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인 등에게 총 6조원을 투입하는 내용을 담은 서민생활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하는 노인 110만여명에게 6개월간 월평균 20만원의 현금이 지급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그렇지만 복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이 같은 복지예산이 '현장'에서 줄줄 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와 노인,장애인 등에게 지급돼야 할 복지보조금이 구나 읍 · 면 · 동 단위 공무원들의 주머니로 들어간 사고가 최근 잇달아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 양천구청 직원이 26억원을 횡령한 사건이 적발된 이후 용산구(1억1000여만원),전남 해남군(10억원) 등에서 잇달아 횡령 사례가 터져나오고 있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13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빈곤층 보호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사회안전망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횡령 사건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전에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울시 산하 한 자치구의 도움을 받아 동주민센터(옛 동사무소) 단위에서 복지보조금 지원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고,또 왜 횡령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지 살펴봤다. 현장에서 살펴본 결과 복지업무 담당 공무원들이 마음만 먹으면 관련 서류를 조작해 얼마든지 손쉽게 횡령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몇몇 공무원은 "복지업무를 맡으면서 횡령 유혹을 느낀 적이 있고,의도하지 않게 횡령을 하게 된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횡령 어떻게 일어나나

이곳 주민센터 관계자들은 "중앙정부와 서울시에서 책정한 복지보조금을 대상자들에게 실제 집행하는 곳은 구와 동주민센터"라며 "구와 주민센터의 복지업무 담당자들이 지급 대상자와 금액을 과다하게 보고해 보조금을 타고 이 가운데 일부를 자신의 차명계좌로 집어넣는 방식으로 횡령이 일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주민센터의 복지 담당 공무원이 관내 보조금 수령 대상자 현황을 구청에 허위로 보고해 횡령을 할 수도 있고,동(洞) 등 밑에서 올라온 보고를 바탕으로 구청 소속 공무원이 보조금을 과다하게 신청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도 횡령을 할 수 있는 것은 공무원 한 명이 관리하는 복지보조금 수령 대상자가 지나치게 많아 이에 대한 관리 · 감독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이 동주민센터 소속 복지업무 담당 공무원 A씨가 관리하는 보조금 지급 대상자 명단에는 250여 가구주와 동거인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A씨는 "구 단위에서 보조금 지급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 · 기능직 공무원의 경우 한 명당 수천명을 맡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여기에 복지보조금의 수령 대상이 아닌 몇몇 가구를 끼워넣어도 티가 안 나게 마련"이라며 "이렇게 복지보조금을 실제로 지급받아야 할 금액보다 과도하게 청구해도 팀장이나 과장급 등 윗선에서 적발해내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보조금 관리 · 감독에 문제가 있다"고 귀가 따갑게 지적해도 막상 현장에서 이를 시정하기란 쉽지 않은 셈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이 2005년 내놓은 '외국 공공부조 전달체계 비교분석'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복지직렬(복지업무 전담) 공무원 한 명이 담당하는 인구 수는 6725명으로 미국(602명) 영국(708명) 등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조금 지급 방식의 문제점

이곳 동주민센터 소속 복지 담당 공무원 B씨(41)는 "사실 의도하지 않게 소액을 횡령한 경우가 몇 차례 있다"고 털어놨다. 사연은 이렇다. 동 단위에서 근무하는 복지공무원들 가운데는 보조금 수령이 어려운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대신해 자신의 계좌로 보조금을 받은 뒤 이를 찾아서 수령 대상자에게 전달해 주는 사람이 많다. 선의에서 시작된 게 관례화된 것.B씨 역시 이런 식으로 다수의 통장을 관리해 왔다. 그런데 그가 대신 돈을 받아주던 90대 노인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물론 지급된 보조금은 센터장에게 보고하고 반납했지만,이유야 어쨌든 B씨는 일시적으로 횡령을 한 셈이 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도 대규모 횡령이 이뤄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복지보조금 지급은 △동주민센터에서 올라온 자료를 바탕으로 △구청 공무원이 수령 대상자의 이름과 계좌번호가 적힌 명세서를 은행에 넘기면 △은행은 이들 계좌로 돈을 송금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그렇지만 명세서에 나타난 이름과 계좌번호 가운데 상당수는 주민센터 소속 공무원들의 것이고,은행과 구 차원에서 이를 적발해 내기는 쉽지 않다.

복지업무가 '행정직 · 기능직-복지직렬'로 이원화 돼 있는 것도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사회복지사 출신으로 사회복지 업무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복지직렬과 달리 행정직 가운데 극히 일부는 자신의 업무에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3D'로 분류될 정도로 업무 부담은 큰데 돌아오는 혜택은 작으니 '딴 생각'을 품는 경우도 일부 생긴다"는 게 일선 공무원들의 전언이다.

A씨는 "복지직렬 공무원이 행정 · 기능직 공무원을 '크로스 체크'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수백명의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민원업무를 하고 나면 '파김치'가 돼 보조금 지급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없을 때가 많다"며 "그리고 극히 일부의 '양심 불량 공무원'을 찾아내기 위해 동료 공무원들끼리 의심하는 일이 벌어지면 이 일(복지업무)을 못 한다"고 말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