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담보대출시 대출액.기간.이율 적시안해
자통법 위반…금감원 "사안 따져 조치 검토"

재벌가들이 보유주식 담보대출 내역을 공시하면서 관련규정상 필수기재 항목을 예사로 누락해 투자자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자본시장법상 상장주식 대량보유자는 보유주식의 신탁, 담보, 대차 등 주요 계약을 체결하거나 변경한 경우 지분에 영향이 초래될 수 있어 담보주식과 대출액수, 대출기간과 이율 등을 상세히 공시하게 돼 있으나 재벌가의 경우 일부 내역만 공시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공시내역서의 빈칸을 제대로 채우지 않음으로써 법을 예사로 어기고 있는 셈이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현대차 주식 827만주를 우리은행, 대한생명, 교보생명, 삼성생명, 기업은행에, 현대모비스 주식 678만주를 제일은행, 삼성생명, 기업은행에 담보로 제공했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이런 공시 내역으로는 정 회장이 보유주식을 담보로 얼마를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얼마만큼의 이율로 대출받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이는 세금포탈과 농협회장에 대한 청탁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주식담보대출 내역을 세세하게 공시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박 회장은 올해 1월14일 삼성증권에서 휴켐스 주식 104만1천670주를 담보로 6개월간 100억원을, 1월 21일에는 한국증권금융에서 휴켐스 주식 160만주를 담보로 1년간 150억원을 대출받았다고 공시해 옥중대출을 받아 탈루한 세금을 납부한 사실이 공개된 바 있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도 보유 중인 글로비스 주식 중 130만주를 우리은행에, 기아차 주식 686만주를 우리은행과 제일은행에 담보로 제공한 상태라고만 공시했다.

두산 박용곤 명예회장을 비롯한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 회장 등 두산그룹 일가도 두산 주식 840여만주를 하나은행, 우리은행, 한국증권금융에 맡겨둔 것으로 나타났으나, 해당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은 금액이나 대출기간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밖에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보유한 GS홀딩스 주식 중 82만주가 우리은행, 우리투자증권, SC제일은행에 담보로 잡혀있다고 공시했으나 역시 대출액수나 기간은 공시하지 않았다.

반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달 9일 자신이 보유 중인 한화 주식 450만주에 대해 우리은행에 1년간 질권설정을 하고 360억원을 대출받았다고 공시했다.

김 회장의 특수관계인들도 담보대출 액수를 공개했다.

이와 관련, 금감원 관계자는 "지분공시 서식에 대출액수와 기간, 이율까지 세세하게 공시하도록 안내했는데 재벌가에서 서식대로 공시를 작성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사안의 중대성을 따져 조치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당초 대량보유자에게 보유주식에 대한 담보나 신탁계약 내역을 공개하도록 한 이유는 투자자들이 담보기관의 갑작스런 주식 처분으로 지분에 변동이 생겨 지배권에 영향이 갈 경우에 대비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세세한 내역 자체는 부수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