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우리 시단을 이끌어갈 젊은 시인은 누구일까. 문학전문 계간지 <시인세계>는 강은교,김선우,김종해,김혜순,문인수,신달자,오탁번 등 시인 56명과 권혁웅,김용희,장석주,진순애,최동호 등 평론가 34명에게 2000년 이후 등단한 주목할 만한 시인을 각각 5명 이내로 추천받아 그 결과를 봄호에 실었다. 이에 따르면 최고의 기대주는 김경주씨로,총 52명의 추천을 받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황병승씨(28명 추천),신용목씨(22명 추천),진은영씨(21명 추천),최금진씨(20명 추천)가 이었다.

문학평론가인 권혁웅 한양여대 문창과 교수는 "김경주씨는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하고 지시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며 결여와 부재가 기능하는 특별한 형식을 만들어낸다"면서 "그는 낭만주의의 적자"라고 평했다. 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씨는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와 《기담》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지난해 말 문학 계간지 <서정시학>이 평론가 50명의 추천을 받아 뽑은 우리 시대 대표 젊은 시인으로도 꼽혔다.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선정된 시인들의 시 세계를 네 가지로 나누었다. 김경주씨와 황병승씨를 '새로운 언어와 발상과 이미지로 시적 문법을 새롭게 쓰고 있는 시인들'로 구분하며 이들의 작품세계에 대해 "새로운 기층 언어를 통한 외적 확산이 이뤄지고 있다"고 평했다. 박성우,신용목,길상호씨는 '형식에 대한 의지보다는 정통적인 서정적 발화를 택하는 시인'으로 구분지으며 "박씨의 능청스러움과 신씨의 지속과 단절의 긴장,길씨의 내면의 폐허 등은 인간 존재 형식에 대한 성찰로 연결하고자 하는 욕망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이근화,장석원,이민하,최금진씨를 '미세한 감각에 대한 발견과 표현을 통해 새로운 사물의 의미와 생의 형식을 읽어내는 시인'으로 정의하고 "성장 과정에서 입은 트라우마가 이들의 미적 자의식에 반어적으로 표현됐다"고 설명했다.

<시인세계>는 이번 봄호에 상위 추천된 시인 13명이 스스로 선정한 대표시와 신작시를 함께 실었다. 김경주씨는 대표시로 <주저흔>과 <기미>를 선정했다. '몇 세기 전 지층이 발견되었다// 그는 지층에 묻혀 있던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히 벗겨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발굴한 화석의 연대기를 물었고 다투어서 생몰연대를 찾았다/ 그는 다시 몇 세기 전 돌 속으로 스민 빗방울을 조금씩 긁어 내면서/ 자꾸만 캄캄한 동굴 속에서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저흔> 중)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