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가 자신의 최대 개혁 정책으로 평가되는 '우정민영화'를 비판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서면서 일본 정국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아소 총리는 지지율 10% 후반대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자민당내 세력은 물론 국민적 지지도가 높은 고이즈미 총리의 정면 공격을 받으면서 지난 9월 출범한 정권의 존속이냐 붕괴냐의 최대 기로에 처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지난 12일 오후 당 본부에서 열린 우정민영화추진회 모임에서 아소 총리의 최근 우정공사 민영화 재검토 발언에 대해 "화가 나기 보다는 웃음이 날 정도로 어이가 없다"며 "총리의 발언에 신뢰가 없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아소 총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또 아소 총리가 지지율 제고를 겨냥해 국민 1인당 1만2천엔씩 총 2조엔의 현금을 지급키로 한 '정액급부금'과 관련해서도 "(이를 지급하기 위해 필요한 관련 법안이) 중의원에서 3분의 2를 사용해서라도 가결해야 할 법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중의원 재가결 반대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국회법상 민주당이 장악한 참의원에서 예산 관련 법안이 부결될 경우 중의원에서 출석 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재가결해야 정액급부금 지급이 가능하지만 현재 의석 구도상 자민당에서 최소한 16명이 반대하면 법안 처리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고이즈미 전 총리 집권시 국회에 진출한 '고이즈미 칠드런'을 중심으로 아소 총리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발언이 나옴에 따라 상황에 따라서는 예산 관련 법안의 중의원 재가결이 무산되면서 아소 총리가 '타의'에 의해 총리직을 물러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날 아소 총리에게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 전 간사장과 당내 최대 계파인 마치무라(町村)파 재선의원 모임에서는 "아소 총리의 발언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 "지역구에서는 '아소 총리가 지휘하는 총선에서 자민당을 지지할 수 없다'는 말들이 나온다"는 등 아소 총리를 성토하는 말들이 터져나왔다.

이에 따라 자민당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아소 비판 발언을 계기로 아소 총리측과 반(反) 아소측간의 극심한 힘겨루기가 벌어지면서 아소 총리의 영향력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만 고이즈미 전 총리가 지난해 이번 중의원 임기를 마지막으로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만큼 이번 발언의 폭발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아소 총리 진영이 차기 중의원 선거의 공천권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반 아소측 의원들의 행보가 자유롭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아소 총리는 12일 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러가지 비판이 있다고 들었다.

발언에는 신중을 기했으면 좋겠다"라며 "지금 정책을 통해 국민이 원하는 경기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정면 대결을 피했다.

그는 또 이날 밤 고가 마코토(高賀誠) 선거대책위원장,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전 총리 등과 만나 정부와 여당이 단결해 2009 회계연도 예산안 조기 국회 처리를 당부하는 등 당 결속을 통한 대응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런 가운데 고이즈미 전 총리는 14일부터 20일까지 자신이 고문으로 있는 민간 연구기관과 러시아 연구기관간의 회의에 참석한다는 명목으로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이어서 그의 '러시아 구상'이 주목된다.

그가 우정민영화의 지속 추진을 내걸고 정계은퇴 발언을 취소하고 정치 무대로 복귀할 경우 여권의 권력지도가 그를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는 등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민주당은 전현직 총리간의 정면 충돌로 인한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여당내 충돌로 아소 총리가 조기에 총리직에서 밀려나고 총선을 실시해 정권을 잡는다는 구상으로 아소 총리에 대한 공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choina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