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지도부가 9일 총사퇴함으로써 간부의 성폭력 사건은 일단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성폭력 은폐 · 축소 과정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고위 간부가 관여했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파문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사태가 진정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또 종전 온건파 중심의 민주노총 지도부를 강온파가 공동 참여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대신하게 돼 운동기조도 지금보다 훨씬 투쟁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현재 핵심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기간 연장을 비롯 단위사업장 복수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 굵직굵직한 노동 현안을 둘러싼 노 · 정 마찰로 법 개정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 도덕성 파문 확산 서둘러 봉합


구속수감된 이석행 위원장을 비롯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한 것은 갈수록 파문이 확대되고 있는 성폭행 사태를 서둘러 진압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당초 이 위원장은 수감 중인 이유를 들어 "사퇴하지 않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는 데다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조직 내 강경파들의 비난여론이 거세지면서 결국 사퇴로 방향을 틀었다. 진영옥 수석부위원장도 이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막고 조직 내 모든 성폭력이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총사퇴한다"고 사퇴 배경을 밝혔다.

조직 내 강경파 측에선 "성폭행 파문으로 지도력과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은 지도부는 수감 중인 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사퇴하라"며 계속 압박해왔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함으로써 사태는 진정국면을 맞고 있다. 하지만 전교조 상층부가 성폭력 은폐 · 축소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다 시민단체들과 민주노총 내 일부 세력이 계속 문제를 삼고 있어 사태가 완전히 진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노동계는 내다보고 있다.

◆ 강경노선 걸을 듯

민주노총은 11일 중집위를 열어 금융 공공 전교조 사무 보건의료 공무원 등 6개 산별대표와 서울 경기 강원 등 3개 지역본부대표가 참여하는 비대위를 구성키로 했다. 새로운 비대위가 출범하면 민주노총 기조는 투쟁쪽으로의 선회가 불가피하다. 온건파로 구성된 전임 집행부는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은 상태여서 강경파 중심으로 비대위를 꾸릴 가능성이 크다. 온건파인 이석행 지도부가 불법 파업을 밥먹듯이 벌였지만 강경파들은 지도부의 투쟁 강도가 약하다며 계속 불만을 표출해왔다. 이 위원장이 불법 파업을 벌여 감옥에 간 것도 강경 투쟁을 요구하는 좌파들의 흔들기에 떼밀렸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강경파들이 비대위를 장악할 경우 민주노총의 운동노선은 투쟁쪽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중앙파와 현장파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들은 이석행 집행부의 온건노선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왔다. 강경파들은 이석행 체제가 MB의 신자유주의에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해왔다. 실제로 이 위원장은 재야시민단체들과 민주노총 내 금속노조가 2007년 벌인 한 · 미 FTA 반대 파업에 참여하지 않아 강경파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더 이상 투쟁을 외면할 수 없던 그는 지난해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불법 파업을 주도,구속되고 말았다.

앞으로 노정관계도 급속히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 대화에 소극적 자세를 보였던 강경파들이 비대위를 장악할 경우 현재보다 노정 간 대화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 연말 차기위원장 선거까지 예정돼 있어 강경파와 온건파 간 선명성경쟁까지 겹쳐질 경우 노정 갈등은 물론 노노 갈등까지 우려되고 있다. 한편 민노총은 내규에 따라 오는 4월8일까지 이 위원장의 잔여임기를 채울 보궐선거를 실시키로 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김동욱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