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꼭 20년 전,1989년 2월1일은 우리나라가 헝가리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날이다. 당시 세계적 이목이 서울에 집중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냉전이 엄연했던 국제적 현실 속에서 사회주의 국가였던 헝가리가 우리와 최초로 수교를 한 것이다. 양국이 수교를 결심하게 된 데에는 서로에 대한 이끌림이 있었다.

당시 북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던 한국은 그 첫 번째 대상국가로 탈냉전화를 추구하던 헝가리를 선택했다. 사회주의권에서 개혁과 개방의 선두주자였던 헝가리도 아시아 신흥국가로 도약하는 한국을 경제 파트너로 삼고자 했다. 이러한 수교의 실리적 계산 뒤에는 민족의 기원이 같다는 동질감과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역사를 공유했다는 서로에 대한 친밀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헝가리와의 수교로 우리는 분단 이래 처음으로 반쪽 외교에서 벗어나 전 세계를 향한 전방위 외교를 본격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고,헝가리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동력과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매출액 기준 헝가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랑받는 기업으로 성장했고,투자액 기준 최대 한국 기업인 한국타이어는 헝가리의 대표적 외국투자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TV 시리즈 '대장금'은 유럽에선 처음으로 헝가리에서 지난해부터 방영돼 최고시청률 35%,평균시청률 25%대를 기록하면서 한국 음식과 문화에 대한 선풍적 관심을 끈 바 있다. 전통 명문 ELTE대에는 한국학과가 출범해 지난해 9월부터 신입생을 받기 시작했고,박찬욱 김기덕 감독은 헝가리 영화 마니아들에게 더 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다.

더욱이 한 · 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에 EU 회원국이자 중부 유럽 경제 발전을 선도해온 헝가리는 경제협력대상으로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헝가리가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국제통화기금(IMF)과 EU의 구제금융을 제일 먼저 신청한 나라였다는 이유로 그 경제 전망을 어둡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헝가리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번영을 향해 전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첫째 헝가리의 경제관료와 경제계 인사들이 자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고,왜곡된 경제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헝가리 인적자원의 우수성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헝가리인 노벨상 수상자는 14명에 달한다. 나치 독일보다 앞서 미국이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레오 실라르드나 컴퓨터의 기초원리를 제공했던 야노스 폰 노이만이 그들이다.

헝가리는 유럽 대륙의 중앙에서 동과 서를 연결하는 전략적 위치에 있다. 또 도로와 통신 등 사회간접자본이 우수해 EU시장과 나아가 세계시장으로 향하는 생산전진기지로서의 매력을 갖고 있음도 강점이다. 뿐만 아니라 헝가리는 높은 과학 기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기초과학분야에서는 전통적인 강국이다. 우리 정부도 일찌감치 이 같은 헝가리의 과학기술 잠재력을 인식하고 협력을 추구해 왔다. 헝가리의 우수한 기초과학과 세계 일류수준으로 성장한 우리 기업의 산업기술력이 결합하면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이상적인 협력 모델이 될 것이다.

20년이란 시점은 우리 삶에서 성인이 되는 해를 의미한다. 유소년기 급속한 신체적 · 외적 성장에 이어,지적 영적으로도 성숙해지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나라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우리 정부는 수교 20주년이 되는 올 한 해를 헝가리와 뜻 깊었던 수교 당시를 회고하면서 문화사절단 파견,고위인사 교류,수교 기념학술회의 등 다양한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헝가리와의 관계를 한 차원 높은 성숙한 단계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