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 강호순(38)이 지난 2년간 경기 서남부에서 실종된 부녀자 7명을 자신이 살해했다고 털어놓았으면서 유독 2005년 처가에서 발생한 화재의 방화 혐의에 대해서는 완강히 부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은 자백한 부녀자 연쇄살인죄만으로도 극형을 피할 수 없는데도 처가에 불을 질러 넷째 부인과 장모를 숨지게 한 혐의를 극구 부인, 그 배경을 놓고 궁금증을 낳고 있다.

경찰이 방화살인 혐의를 두고 있는 사건은 2005년 10월 30일 새벽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다세대주택 반지하집에서 일어났다.

이 불로 강의 넷째 부인(당시 28세)과 집 주인인 장모(당시 60세)가 안방에서 숨졌고 당시 건넌방에 있던 강은 그의 큰아들과 함께 창틀을 밀어내고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강호순은 화재 1~2년 전과 1~2주 전 넷째 부인 명의로 모두 4건의 보험에 가입했고 2년 이상 동거하던 부인과 화재 5일 전에 혼인신고를 해 보험금 4억8천만원의 수혜자가 됐다.

장모 집 화재가 강의 방화였다면 보험금으로 타낸 돈을 지키려고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는 추론이 우선 가능하다.

장모 집 화재가 강씨의 방화로 드러나면 보험금을 모두 몰수당하거나 보험사에 반환해야 한다.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법에 따르면 수익액이 3억원 이상 5억원 미만의 사기.횡령.배임죄가 확정되면 중대 범죄로 간주, 범죄수익 관련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

보험사기가 입증되면 법원이 몰수하지 않아도 보험사가 손해배상 또는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제기해 되찾아갈 수 있다.

강호순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2007년 보험금으로 안산에 상가 1개를 2억2천만원에 구입해 임대했으며 에쿠스 중고차를 어머니 명의로 구입하는 등 사실상 보험금을 기반으로 생활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92년 결혼한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16, 14세)을 부양하고 있다.

1998년 첫째 부인과 이혼하면서 두 아들을 맡아 지금까지 부양하며 평소 남다른 애정을 쏟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자신은 처벌을 받더라도 두 아들의 장래를 위해 보험금으로 마련한 재산을 지키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강은 30일 연쇄 살인혐의를 자백하면서 "장모 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아내가 사망한 것에 충격을 받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1년여를 방황한 후 여성에 대한 살해 충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진술에는 '나는 절대 장모 집 방화사건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어 연쇄살인사건과 방화사건을 구분 지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숨진 장모와 부인의 유족과 이웃들은 화재 발생 3년이 지난 지금도 방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유족들은 창틀 시멘트못이 휘어지지 않아 강이 사전에 탈출로를 확보한 것으로 의심되는 점, 3차례의 이혼 전력이 들통나 부부관계가 급속히 악화된 점, 집 구조상 함께 대피가 가능했는데도 이를 외면한 점 등을 들어 방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웃 주민도 "화재 당일 축구경기가 있어 안 자고 있었는데 그 날 새벽 그 집에서 싸우는 소리와 여자 비명소리가 들린 뒤 조용해졌다.

지금도 여자 비명소리가 생생하다.

그때 경찰에 신고했어야 하는데...죄책감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모 집 화재사건이 강호순의 주장대로 방화가 아닐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게다가 3년 전에 발생한 사건이어서 재수사를 통해 증거를 찾기가 어려워 부인으로 일관할 경우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혀내기가 힘든 상황이다.

화재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식 결과는 '화인불명'이었고 경찰은 잠복근무까지 하며 6개월간 내사를 벌였으나 물증을 찾아내지 못했었다.

지금은 현장이 사라져 증거 확보가 불가능하고 그나마 목격자들의 진술도 시간이 지나며 구체성이 사라져 수사 여건이 그만큼 나빠졌다.

(수원연합뉴스) 김경태 기자 kt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