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매물이 몇 개 팔려나가면서 호가가 1억원 이상 급등했어요. 한 달 전 시세를 언급하는 고객이 문의를 해오면 아예 상담조차 해주지 않을 정도입니다. "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A사장은 인터뷰 도중에 걸려온 전화를 짧게 끊으면서 말했다. 그는 "102㎡형을 아직도 7억원대에 살 수 있겠냐는 문의여서 그런 매물은 이제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랬다. 아파트 매물이 나열돼 있는 그의 컴퓨터 모니터에서 8억원 이하 매물을 찾아 볼 수 없었다. 8억원대 후반 매물이 많았고 9억원 이상 가격을 매겨놓은 '배짱호가'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그는 집주인들이 호가를 갑자기 튀겨서 내놓는 바람에 오히려 불안하다고 했다.

"정부가 강남권의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해제를 검토 중이라는데,집주인들이 이처럼 호가를 터무니없이 올려 놓으면 해제 연기 조치가 발표되지 않을까봐 걱정입니다. "

최근 들어 서울 강남권 재건축 대상 아파트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매수문의는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로 늘었고,거래도 살아나고 있다는 게 현지 중개업계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매수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 떨어지기 힘들 것 같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데다 규제완화에 따른 기대감까지 더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초구 반포동에서 부동산을 중개하는 B사장은 "호가가 많이 올라 추격매수에 나선 사람이 사라졌지만 요즘도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는 손에서 전화통을 놓기 힘들다"고 최근 강남 재건축시장에 대한 반응을 설명했다. 그는 또 "반포자이 건너편 동아아파트 105㎡형은 6억원대 매물이 팔려나가면서 7억원대를 회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2롯데월드의 초고층 빌딩 건설이 가시화된 송파구는 한 차례 초단기 급등이 휩쓸고 간 뒤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는 매도호가가 작년 말보다 2억원 이상 올랐다. 한때 10억원 이상 호가했던 112㎡형은 한 달 전만 하더라도 7억원 안팎에서 거래가 이뤄졌지만,급매물이 소화되자 요즘 들어서는 다시 호가가 9억원대에 걸리고 있다.

인근 E공인 관계자는 "이달 초에는 정말 대단했다"며 "요즘은 집주인들이 아쉬울 것 없다는 생각으로 급매물을 내놓지 않아 매도 · 매수자 간 호가격차가 2억원이상 벌어져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12월 중순 무렵에는 저가매수에 나서려는 사람들이 매일 같이 찾아와 오랜 만에 불경기를 잊어봤다고 덧붙였다.

강남구 개포주공은 아직까지 문의가 꾸준한 편이다. 일부 중개업소에는 하루 10명 이상씩 꾸준히 찾아오기도 한다. 개포주공 아파트단지 내 A공인을 찾았을 때는 중년 여성 3명이 팀을 이뤄 집값을 알아보고 있었다. 아직까지 대출 한도가 집값의 40%로 제한돼 있어 자금을 마련하기가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은행대출 받아서 투자에 나서기에는 아직 위험한 상황 아니냐"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A공인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현금 동원능력이 있는 분들만 제한적으로 찾아온다"며 "급매물을 거둬들인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은행 도움을 거의 받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현지 중개업계에 따르면 개포주공 4단지의 경우 연말에 7억6000만원 정도 하던 49㎡형이 최근 8억3500만원에 팔리며 매물호가가 8억원대 후반 이상으로 뛰었다. 개포동의 또 다른 중개업자는 "다른 중개업자와 함께 거래를 주선할 물건까지 포함해 연초부터 보름 동안 4건이나 계약을 맺어줬다"며 "동탄이나 위례신도시 마곡지구 등의 토지보상 대상자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고,해외교포의 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기웃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세는 통계에서도 확연히 잡힌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주 송파구 재건축 아파트가격 변동률은 2.45%로 조사됐고,강남구도 0.71%가 올랐다. 이들 지역은 지난달 하순 반등에 성공한 이후 오름폭이 상승추세를 보이고 있다. 강남권 3개구 가운데 아직까지 서초구만 집값이 미미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해양부 발표자료에서도 12월 강남권 3개구의 아파트 거래신고건수는 244건으로 10월(156건)과 11월(133건)보다 늘어났다.

재건축 아파트 시장의 움직임은 미분양 아파트에까지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반포주공3단지를 재건축한 반포자이 모델하우스에는 하루 방문객이 15~20팀에 이르고 문의전화도 30~40통씩 걸려온다. 작년 말에는 방문객은커녕 문의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은 날도 많았지만,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정태인 반포자이 분양소장은 "상담이 곧 계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며 "마이너스 프리미엄 상태로 반포자이 조합원 매물이 어느 정도 소화되면 미분양 물건도 본격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