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자 분양가도 '흥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시세가 분양가를 밑도는 '마이너스 프리미엄' 아파트가 속출하면서 손실을 보전하려는 입주 예정자들의 분양가 인하 목소리가 높아지는 추세다. 신규 수요자들 역시 주변의 낮은 아파트 시세를 근거로 건설사에 가격을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도금 납부를 거부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등 실력행사도 빈번하다.

2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경기도 용인 동천의 한 아파트단지 입주 예정자들은 시공사에 분양가 인하를 요구하며 중도금 납부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9월 분양 당시 3.3㎡ 당 1726만원으로 주변 시세보다 100만~200만원 비싸게 공급했지만 미분양없이 2400가구 모두 분양을 완료했다. 그러나 이후 분양권 시세가 급락하면서 '마이너스 프리미엄' 가구가 속출했다. 한 입주 예정자는 "분양권 가격이 현재까지 1억원 가까이 빠졌다"고 주장했다.

미분양 물량을 할인 분양하는 단지에서는 기존 계약자들이 분양가 인하 소급 적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김포 고촌 W아파트 계약자들은 시공사가 이달 초 미분양 아파트 분양가를 3300만~3700만원 내리자 형평성 문제를 들며 회사 측을 압박하고 있다.

아파트 예비입주자 모임 관계자는 "159㎡형 미분양을 할인 구매하면 기존 142㎡형을 정식으로 분양받아 계약했을 경우와 분양가가 비슷하다"며 "분양가 인하를 소급 적용해주지 않으면 계약 해지 소송을 내고 중도금 납입을 보류하겠다"고 말했다.

인근 아파트 분양가 인하를 근거로 건설사를 압박하는 수요자와 입주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김포 한강신도시에서 아파트를 분양 중인 우남건설에는 요즘 "인근 고촌 월드메르디앙처럼 분양가를 낮춰주면 미분양 아파트를 사겠다"는 문의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직접적인 분양가 인하 대신 옵션 무상 설치 등을 통해 간접적인 인하 효과를 보려는 요구도 많다. 경기도 용인시 상현동 H아파트 입주 예정자 860여명 가운데 10%가량은 추가 옵션 무상 설치와 중도금 후불제,섀시 무상교체 등을 요구하며 중도금을 내지 않고 있다.

한 건설사 분양담당 관계자는 "아파트 매매는 엄연히 계약에 의해 이뤄지는 것인데 요즘은 수요자들이 재래시장에서 흥정하듯 하려 한다"며 "건설업계가 과잉 공급으로 자초한 측면도 있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