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히트작 '지구 최후의 날'을 리메이크한 SF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24일 개봉)은 할리우드식 상상력에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을 덧칠한 야심작이다. 대규모 물량과 주인공인 키애누 리브스의 흥행파워를 앞세워 관객몰이에 나섰다.

영화는 전 남편의 아들 제이콥과 살아가는 우주 생물학자 헬렌(제니퍼 코넬리)이 갑자기 정부 기관 요원들에 의해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어딘가로 끌려가면서 시작된다.

과학자들은 외계로부터 돌진하는 미확인 물체로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라는 임무를 받는다. 뉴욕 센트럴파크에는 대형 둥근 물체가 착륙하고 사람과 똑같이 생긴 외계인 클라투(키애누 리브스)가 걸어 나온다.

클라투는 각국 정상들과 회담을 요청하지만 무시당하자 지구 생태계를 구한다는 미명아래 인류 말살 계획에 착수한다. 헬렌은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설득작전에 나서는데….

한 마디로 지구를 파괴하고 있는 인류에 대해 경각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환경영화다. 여기서 클라투는 인간의 무지함을 심판하는 재판관격이다.

그러나 지구 환경을 구하기 위해 인간을 멸종시킨다는 클라투의 구호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인류가 지구 생태계의 일원으로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더라면 공감대가 넓어졌을 것이다.

인류 멸종의 위기를 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헬렌으로 하여금 클라투의 마음을 돌리게 한다는 설정도 부자연스럽다.

특수효과 역시 투입 물량에 비해 실감이 떨어진다. 클라투와 함께 온 거대로봇 고트가 레이저를 쏴 전투기와 전차를 격추시키고 강철 모기처럼 생긴 나노봇이 대형 트럭과 야구장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착상은 그럴 듯하지만 나노봇이 떼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은 회색 구름 정도로 표현됐고,문명이 파괴되는 장면도 CG로 작업한 것이 눈에 띌 정도로 허술하다.

지난 12일 미국에서 개봉돼 첫 주 약 3000만달러의 흥행수입으로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지만 둘째 주에는 1000만달러에 그치며 4위로 주저앉았다. 50년 전 대박을 터뜨린 작품이긴 해도 허술한 스토리와 영상 탓에 뒷심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