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핵보유국' 명시 이어 `北 핵폭탄 여러 개 제조' 언급
"북핵능력 정확한 분석 후 현실적 대책 마련해야"


과연 북한의 핵능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북핵 문제를 다뤄온 6자회담이 북한이 제출한 핵신고내역에 대한 검증문제라는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좌초위기에 빠진 가운데 북한 핵능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 국방부 산하기관의 보고서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에 포함시킨 데 이어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최근 한 기고문에서 북한이 이미 여러 개의 핵폭탄을 제조했다고 `핵폭탄성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2006년 10월 핵실험을 실시한 뒤 대외적으로 핵무기 보유를 주장하며 협상테이블에서 `몸값'을 높이기 위해 부심해왔다.

이에 대해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실험이 핵폭탄 실험이 아니라 핵폭발장치 실험이고 그나마도 부분적인 성공에 그쳤다고 분석하며 북한의 핵능력을 인정하지 않아왔다.

그 대신 양국은 북핵 6자회담을 비롯한 외교적 노력과 국제적 압박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통해 북한에 모든 핵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의 북핵정책이 북한 핵 자체에 대한 폐기보다 북한의 핵확산을 차단하는 데 중점을 두는 듯한 양상을 띠더니 최근엔 북한의 핵능력을 미국에 대한 `현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일 차기 미국 행정부의 외교안보팀 인선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이란으로 핵무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 외교안보팀에 대한 첫 번 째 외교지침이었던 셈이다.

이런 가운데 미 국방부 산하 합동군사령부가 지난 달 25일 발간한 `2008 합동작전 환경평가 보고서'에선 처음으로 북한을 중국, 러시아와 함께 핵보유국에 포함시켰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북한을 절대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혀왔지만 오바마 정부의 출범을 앞둔 시점에 국방부 보고서에서 북한을 슬며시 `핵보유국'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한국 정부는 즉각 경위를 파악하고 미 국방당국에 강력 항의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 출석, "미국의 명백한 착오"라면서 "미국이 금명간 관련당국 웹사이트와 정례브리핑을 통해 착오였다는 점과 함께 미국 입장을 명확히 밝힐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 합동군사령부는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에 대한 언급이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을 반영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으나 보고서를 수정하지는 않았다.

이런 가운데 게이츠 국방장관이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 최신호(2009년 1.2월호) 기고문에서 "북한이 핵폭탄 여러 개를 제조했다(North Korea has built several bombs)"라고 밝힌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은 제기돼왔지만 책임있는 미 정부 관계자가 북한의 핵폭탄 제조를 단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며, 아주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을 핵보유국에 포함시킨 보고서에 이어 국방장관의 글에서 북한의 핵폭탄 제조 주장이 제기되면서 미 행정부 전체는 아니더라도 군당국에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또 합동군사령부가 문제의 보고서 내용에 대해 해명하면서도 이를 수정하지 않는 것도 미군 당국의 이 같은 입장 때문이 아니냐는 추론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이는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북핵능력 평가와는 상당 정도 거리가 있는 것이라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북한의 핵능력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평가해왔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10월22일 국정감사 답변에서 북한은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지만 자신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북한이 추출한 플루토늄으로 6~8개의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추정이 있는데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인 지 확인된 것은 없다"는 게 유 장관의 답변이었다.

김태영 합참의장도 지난 10월8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핵무기) 6~7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가진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지, 없는 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고만 답변했다.

게이츠 장관은 오바마 정부에서도 계속 국방장관으로 남게 된다는 점에서 이제 관심은 게이츠 장관의 이 같은 북핵인식이 북핵 및 대북정책에도 반영되느냐에 쏠리고 있다.

북한의 핵야욕을 저지하기 위해선 한.미 양국의 공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제부터라도 한.미 양국은 북핵 능력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통해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안보적, 외교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