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일석 <올림푸스한국 사장 isbang@olympus.co.kr>

만산이 홍엽(紅葉)으로 물들었던 아름다운 가을을 지나 계절은 벌써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다. 일기 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말엔 강추위가 찾아올 모양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달콤한 성탄과 연말연시를 기대했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경제가 안 좋아 잔뜩 움츠린 모습들이다.

그래도 월동 준비하는 분위기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미디어들은 각종 김장 담그기 행사와 소외 받는 이웃들,특히 늘어가는 독거노인들을 위한 기업과 단체의 봉사활동을 보도하며 훈훈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김장 준비는 우리 민족 고유의 즐거운 먹거리 축제가 됐다.

요즘은 서구화로 식생활 패턴이 바뀌고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김장 담그는 풍경도 줄었다. 우리 어머니들은 이맘 때가 되면 이웃 아주머니들과 함께 저린 배추를 준비하시고,맛깔스런 김장 속을 만들었다. 김장 담그는 날은 잔칫집처럼 떠들썩하고 웃음이 넘쳤다. 필자의 가슴 속에는 맛깔스런 향토 젓갈과 각종 야채,햇과일을 채 쓸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이 스틸 사진처럼 선명하다.

가난하던 시절 학생들의 도시락 반찬은 대부분 김치였다. 그래서 가방 바닥엔 김치 국물 자국이 또렷이 남아 있었고,대부분의 교과서 가장자리는 김치 국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도시락 반찬을 보면 친구들의 가정 형편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제법 잘사는 친구는 소시지에 계란말이,장조림 등을 싸왔다. 그런 반찬들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그래도 가장 사랑받는 건 김치였다.

요즘 모두가 어렵다고 한다. 마음이 움츠러들면서 대부분의 가정이 가계 지출을 줄이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의 매출이 줄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하루하루 접하는 어두운 소식들은 마음까지 춥게 한다. 이럴 때일수록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는 것도 경제 불황과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방법이 될 것이다. 여기에다 맛있고 영양가 높은 김장 김치를 내놓는다면 식탁의 행복지수를 더 높여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서 필자는 얼마 전 임직원들에게 '김장 지원금'을 전달했다. 고부가가치를 실현하는 '작지만 강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한햇동안 몸을 아끼지 않고 땀 흘려준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하다.

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가족들과 함께 김이 설설 나는 흰 쌀밥에 햇김치를 곁들여 식사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에 훈훈한 온기가 전해오는 듯하다. 가정에서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된 그들은 직장에서도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번 주말 가족들이 모두 모여 맛깔스런 김장 김치를 나눠먹으며 행복을 충전해보자.즐거운 대화까지 곁들인다면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