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경기 위축 전세시장 '불똥'

#사례1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사는 A씨는 최근 강동구 상일동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생돈 1700만원을 날렸다.

지난 9월 입주를 시작한 직장 근처 아파트 85㎡형을 1억7000만원에 전세 계약했지만 잔금을 마련하지 못해 계약을 해제할 수밖에 없었던 것.A씨는 "집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이 참에 살고 있는 다세대주택을 팔고 새 아파트에서 2년간 살면서 기회를 엿보려 했으나 8월부터 내놓은 집이 팔리지 않아 잔금을 못내 아까운 계약금만 날렸다"며 울상을 지었다.

#사례2 . 2년 전 대전광역시로 발령받아 현지에서 전세 생활을 하던 회사원 B씨도 최근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면서 보증금 일부를 손해보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살고 있던 감정가 2억1000만원짜리 아파트(102㎡)가 경매에서 두 차례 유찰되며 1억3500만원에 낙찰되는 바람에 전세보증금 1억4000만원 중 500만원을 받지 못했다. B씨는 "집값 대비 전셋값 비중이 50%를 넘긴 했지만 선순위 저당권이 없는 '깨끗한' 집이라 안심하고 들어왔는데 경매처분돼 낙찰 가격이 반토막 가까이 나 보증금을 손해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거래건수가 급감하고 집값이 떨어지면서 전세시장까지 그 '불똥'이 튀고 있다. 매매 및 전세 거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돈이 묶이는 사례가 속출하며 일부 신규 대단지 아파트 위주로 '역전세난(세입자를 찾지 못해 전세 물건이 넘치는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로 이사비용,중개 수수료 등을 아끼기 위해 기존 전셋집에 눌러앉거나 부동산 거래가 되지 않아 자금 마련을 못해 이사를 미루는 경우가 늘면서 이사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며 "특히 송파,강동구 등지에서 최근 입주한 대규모 신규 재건축 아파트들은 세입자 부족으로 전셋값이 갈수록 떨어져 두 달 새 2000만원 이상 빠진 단지도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11월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1.28% 하락해 올 한 해 월간 변동률 기준으로 가장 많이 떨어졌다. 세입자가 우위를 점하는 역전세난 상황에서 계약이 이미 체결됐음에도 세입자가 집주인을 압박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암사동 롯데캐슬퍼스트 단지 내 T공인중개 관계자는 "지난 8월 롯데캐슬퍼스트 112㎡형 전세를 1억9000만원에 계약한 세입자가 최근 잔금 납부를 앞두고 전셋값이 1억6000만원까지 떨어지자 추가로 보증금 2000만원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옛날 같으면 위약금 물고 계약이 파기될 사안이지만 세입자를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집주인들도 가능한 한 가격을 조정해 계약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호진 기자 / 이문용 인턴(한국외대 3년) hj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