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현실감 있는 대사와 진한 인간애 외에 형식 면에서의 독창적인 실험이다.

송혜교, 현빈 주연의 KBS 2TV 월화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역시 옴니버스식 구성과 적극적인 내레이션 활용 등 독특한 형식이 돋보인다.

그러나 일부 시청자들은 "내레이션이 너무 많다"는 등 낯설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들의 사는 세상'의 저조한 시청률에 이런 시선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미드'에 익숙한 젊은 층 시청자들은 "잘 만들어진 '미드'에 필적하는 세련된 구성"이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노 작가는 2006년 방송된 '굿바이 솔로'에는 7명의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플래시백을 이용해 출연진의 과거와 심리를 표현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왔다.

◇'미드' 식 내레이션 화제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일은, 지난 사랑에 대한 충분한 반성이다.

그리고 그렇게 반성의 시간이 끝나면, 한동안은 자신을 혼자 버려둘 일이다.

그게 한없이 지루하고 고단하더라도,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다시 시작할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른다."

현빈의 격정적인 눈물 연기가 돋보였던 2회 '설레임과 권력의 상관관계' 중 지오(현빈)의 내레이션이다.

준영(송혜교)과 지오의 목소리에 담긴 감성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내레이션은 기존 국내 드라마에서 시도된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공감을 사고 있다.

드라마 게시판과 블로그 등에는 내레이션이 따로 읽히며 화제가 되고 있으며 '그들이 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마련된 내레이션 코너도 호응을 얻고 있다.

회별로 '적(敵)', '아킬레스건', '내겐 너무도 버거운 순정' 등의 부제를 달아 연속된 흐름 속에서도 매회 완결된 에피소드를 담는 '미드'식 옴니버스 형식도 국내 드라마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구조이다.

노희경 작가는 "옛날이야기 하듯 이야기를 자꾸 꾸미지 않고 다큐멘터리와 같은 드라마가 소통이 더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형식적인 면에서 변화를 줬다"며 "제목과 내레이션에 대해 특히 고민을 많이 하며 썼다"고 말했다.

◇모두가 주인공인 드라마

드라마 안에서 모든 배우가 각자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갖는 점도 노희경 작가 드라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송혜교와 현빈이라는 스타가 출연하지만 모든 등장인물이 그들과 더불어 각자의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다.

노희경 작가는 "아무리 스타가 출연한다고 해도 '투톱'이 아니라 주변인물과 더불어 가는 것은 그동안 계속 해오던 것"이라며 "살면서도 한 사람만 두드러진다면 고통도 다 짊어져야 하고 혼자 너무 괴롭지만 같이 가다 보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극중 지오와 준영 외에 드라마 국장과 배우의 만남인 민철(김갑수)과 윤영(배종옥), PD와 신인배우 간에 사랑이 싹트는 규호(엄기준)와 해진(서효림) 등 다양한 커플의 로맨스가 그려진다.

사랑이 세상 인간관계의 전부가 아니듯 '그들이 사는 세상' 속 또 다른 관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극단적인 성격의 규호-지오는 앙숙인듯하면서도 동료애를 느끼고, 준영과 서우(김여진) 역시 으르렁대면서 가까운 사이로 발전한다.

중견배우와 조연출인 민숙(윤여정)-수경(최다니엘)도 웃음을 던지고 있다.

노희경 작가는 "민철과 윤영은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 다시 만난 커플인데 쓰기도 정말 독특했고 고민할 게 많아 힘들었다"며 "규호와 지오, 준영과 서우의 우정 등 여러 관계 속에서 다양한 인간관계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doub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