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쇼크 이후…격량의 40일] PB들이 전하는 '큰 손'들의 금융위기 대처법 "내년 실물경제 가늠하며 투자 밑그림 구상"

MMF등단기로 돈 보유하다, 채권상품 갈아타기 늘어

지나친 비관은 금물, 지금은 멀리보는 지혜 필요한 때

"과거 1920년대 미국의 대공황시절에도 투매에 동참해 증시를 빠져나가서 성공한 투자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의 어려운 시련을 헤쳐나가야만 장기투자를 통한 초과수익이란 과실을 맛보지 않겠습니까. "

금융시장이 패닉상태에 빠져들면서 은행과 증권사의 PB(프라이빗 뱅커)들의 어깨도 함께 처지고 있다. 그렇지만 주가폭락과 환율폭등으로 시장이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 대공황때 그랬고,10년 전 경험했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도 시차를 두고 시장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수도권 부자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라는 지방 '큰 손' 고객을 상대하는 장동기 신한PB 부산센터장은 이런 소신을 갖고 있는 PB 중 한 명이다. 장 센터장은 "8월 이전에 이런 위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전문가들이 이제 와서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는 것도 문제"라며 "국내 인구의 평균 연령을 감안할 때 향후 예금과 같은 확정금리 상품으로 자산관리가 된다고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현주미 굿모닝신한증권 명품PB센터장은 "한국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8배까지 내려가 세계 최저 수준이 됐다"고 지적했다. 한경준 한국투자증권 PB는 "큰 손 고객들은 일반 리테일(소매영업) 점포 고객들과는 달리 당장 돈을 빼달라거나 감정을 앞세우는 경우가 별로 없다"며 "오히려 당장은 안전자산으로 옮겨 위험구간을 통과한 뒤 내년 이후를 모색하고 있는 상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봉수 하나은행 PB도 "큰 손 고객들은 금융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증시의 바닥이 어디쯤인지를 자주 묻는다"며 "내년 실물경기 예측까지 포함해 투자 밑그림(계획)을 그리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물론 '큰 손'들의 투자자금이 벌써부터 미래의 장기수익을 위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게 상당수 PB들의 얘기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 대한 단기 전망도 일단은 비관적인 편이다. 그렇다보니 안전자산인 정기예금이나 MMF 및 CMA(종합자산관리계좌) 등에 단기로 돈을 옮겨놨다가 비과세 국민주택채권,정부채,특수채,채권형펀드 등 채권상품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증시에서 은행으로 빠져나가는 돈도 확정금리상품이 인기다. 일부 분리과세 카드채도 인기다. 일부는 아예 고금리 상호저축은행으로 옮기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한다.

자금은 3개월~1년 이내로 짧게 굴리고 있다. 야구경기로 치면 배트를 짧게 내려잡고 '저스트 미트'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코스피지수가 1500포인트 아래로 떨어지면서 이미 현금비중을 30~40%까지 늘린 부자들도 적지 않다는 게 일선 PB들의 전언이다. 삼성증권 fn아너스삼성타운의 한덕수 차장은 "두 달 전 한 고객이 20억원 정도를 현금화했는데 MMF(머니마켓펀드)에 넣어 놓고 금융위기가 사그라들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조정폭이 큰 국내 주식형 펀드를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부동산에 대한 관심도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추가 하락에 베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김인응 우리은행 투체어스강남센터 PB팀장은 "국내외 할 것 없이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식었다고 보는 게 맞다"며 "국내 부동산 경기는 내년 상반기는 지나봐야 알 것 같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동기 신한PB 부산센터장은 "지방 아파트 미분양을 매일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고객들이 부동산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재미있는 건 해외의 금융자산을 국내로 송금해 원화로 바꾸는 사례는 꽤 늘고 있다는 점이다. 금리면에서도 한국이 유리하고 환율도 많이 올라있어 '1석2조'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복수의 PB들은 이구동성으로 "해외에서 사업을 하거나 달러를 100만~200만달러씩 해외에서 보유하고 있는 고객들은 환율이 1350~1400원대에 달하면서 원화로 바꾸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내 증권업계의 대표적인 비관주의자로 꼽히던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지나친 비관주의를 경계했다. 김 센터장은 "투자자들이 너무 극도의 공포감에 빠져 IMF 시절과 비교하는데 우리기업의 실력이 달라져 있다"며 "국내 기업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낮게 잡아도 13.3%에 달한다"고 말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