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우체국빌딩 21층 한 사무실에서는 희한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회의 주제는 '국내 기업의 온실가스 잠재 감축량 연구 용역을 맥킨지에 맡기려는 이유'.비공개로 진행된 이 회의에는 총리실과 재계에서 20여명이 참석했다. 이 회의가 관심을 끈 이유는 두 가지.우선 분위기였다.

"연구를 왜 하필 외국계업체에 맡기려 합니까. 국내 국책연구기관들도 많은데."(기업 관계자 A씨) "외국기관에 맡겼다가 자료가 유출되면 어떡합니까. 그래도 꼭 거기에 맡겨야 합니까. "(B씨) "자료유출 부분은 대책을 세운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확실히 보장될 수 있나요. "(C씨)

기업 관계자들은 3시간여 동안 총리실에서 나온 이명규 기후변화대책기획단 부단장을 상대로 속사포 같은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요점은 기업들의 영업비밀이나 다름없는 온실가스 감축계획 관련 자료를 왜 해외 유출 우려가 있는 외국계 컨설팅업체에 제출하라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질문은 격식을 차렸다고는 하지만 마치 '취조'를 하는 듯한 뉘앙스였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고성(高聲)은 없었지만 충분히 격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기업인들이 공무원을 상대로 외람되게(?) 격한 질문을 던지다니….

'연구용역기관 선정'이 회의 주제가 된 것도 이례적이다. 보통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을 보면 연구용역을 실시한 후 그 내용으로 공청회를 열면서부터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연구기관 선정 단계에서부터 반발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이 연구는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국가 장기발전전략으로 제시한 '저탄소 녹색성장'사업의 첫 걸음이나 다름없는 사업이 아니던가.

이 부단장은 회의 내내 맥킨지의 국제적 신인도와 해당 분야에서의 경험,그리고 정보 유출방지책 마련 등을 들어 기업들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기업 관계자들은 끝내 '왜 그토록 총리실이 맥킨지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채 자리를 떠야 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갈 길이 먼 미래전략사업이 연구용역 단계서부터 반발에 부딪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박수진 정치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