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가 19일 외환은행 인수를 전격 포기함에 따라 향후 외환은행 인수전이 어떻게 펼쳐질 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19일 금융계에 따르면 외환은행 인수전은 국민은행과 하나금융 등 국내 금융기관 간 쟁탈전이 될 공산이 크다.

미국발 금융위기 때문에 해외 금융기관들은 인수 여력이 없거나, 현지에서 나오는 매물에 먼저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이 누구 품에 안기냐에 따라 국내 금융권의 판도가 뒤바뀐다.

따라서 국내 금융기관들은 외환은행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가격이다.

최근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기존에 책정된 가격은 너무 비싸다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 KB금융, 하나금융 등 관심
HSBC의 외환은행 인수 포기 소식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곳은 국민은행과 하나금융이다.

강정원 국민은행장과 김정태 하나은행장은 이날 금융협의회가 끝난 뒤 "외환은행 인수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먼저 오는 29일 출범하는 KB금융지주의 행보가 주목된다.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국내의 대형 금융지주회사와 `대등 합병'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1차적으로 `빅3'(국민, 신한, 우리금융)간 대등합병을 꼽았지만 이게 여의치 않다면 기업은행, 외환은행 등 자산규모 100조원대의 은행과 합병해 500조원대로 키우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이러한 구상을 밝힐 당시는 HSBC의 외환은행 인수가 거의 기정사실로 되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따라서 KB금융지주의 M&A 우선 순위는 외환은행 쪽으로 옮겨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6년에 외환은행 인수 계약까지 체결했다가 국내 역풍에 휩쓸려 계약을 파기 당한 국민은행로서는 이번이 설욕의 기회가 될 수 있다.

KB금융지주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국민은행의 취약 부문인 해외 부문을 보완할 수 있는 데다 KB금융지주의 자산을 6월 말 현재 299조3천억원에서 402조 규모로 키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신한금융(304조)과 우리금융(312조)의 추격을 따돌리고 국내 리딩 금융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우선 순위를 말할 수 없지만 다시 상황을 검토해 봐야 할 것 같다"며 "동시 다발적으로 M&A를 추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의 경우 M&A 추진을 위해 올 연말까지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보유하게 된 4조원 가량의 자사주 물량을 국내외 전략적.재무적 투자자들에게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하나금융도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금융계에서는 하나금융이 현재의 정체된 모습에서 벗어나려면 돌파구가 필요한데다가 예전에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한 적이 있고 이후에도 꾸준히 준비해온만큼 이번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M&A와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준비하고 있으며 규모만 늘리는 것은 소용 없기 때문에 효율성 제고와 경쟁력 확충 차원에서 검토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자산 161조원인 하나금융은 새로운 M&A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총 자산이 135조4천억 원인 기업은행 등에 밀려 `빅 4' 리스트에서 빠지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규모도 키우고 소매금융부분도 보완할 수 있다.

다만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인해 예전보다는 뒤로 한 발 물러나 이것저것 재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나금융 한 관계자는 "요즘같은 때에 그 정도 가격이 너무 비쌌던 것 같다"며 "이럴 때 은행들은 현금을 갖고 있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국민은행이나 하나금융이 전략적 차원에서 관심이 있겠지만 지금과 같이 유동성 확보가 최우선인 상황에서는 결정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게다가 론스타 등과 관련해 정치적인 이슈들이 많기 때문에 진행 과정이 쉽지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인수 후보 많아질까
산업은행은 공식적으로는 입장이 없지만 민영화 이후 소매금융 기반을 넓혀야한다는 점에서 역시 외환은행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소매금융 확대를 위한 방안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외환은행 말고도 매물 후보는 많다"면서 "금융시장이 한 번 더 흔들리면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에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노력했던 농협은 내부 문제로 인수를 접은 상태나 여전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흥은행과 LG카드를 잇따라 인수한 신한금융지주는 "현재로서는 추가 M&A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민영화를 앞둔 우리금융 역시 "외환은행 인수를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기업은행도 외환은행을 인수해 덩치를 키우는데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이 실물경기가 어려울 때는 설립취지에 맞추어 중소기업 지원에 충실해야한다는 입장이다.

◇ 전문가들 "타이밍.신중함 중요"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국내 은행들은 손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외환은행 인수전에서 유리한 입장일 수 있다"며 "어떤 전략을 짜느냐에 따라 은행권 판도가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다만 현재 미국의 금융위기로 세계적인 매물이 많이 나오고 있다"며 "미 연방정부가 밝힌 대로라면 현재 100개가 넘는 미 은행들이 문제가 있어 매물이 쏟아질 수 있기 때문에 시야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상황 전개가 다를 수 있는만큼 타이밍과 신중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정현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은행 위주로 M&A가 진행되더라도 유동성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고 (글로벌)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외환은행에 높은 가격을 제시하기는 어려운 만큼 가격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민은행 등 국내 은행들에 매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다만 론스타가 시장에 주식을 직접 내다팔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용욱 대우증권 연구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론스타의 입장"이라며 "론스타가 시장에 주식을 매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구 연구원은 M&A 방식으로 매각이 진행될 경우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 기존에 인수 의사를 밝힌 국내 은행들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겠지만 산업은행 등 다른 은행들로 인수후보군이 넓어질 수 있는 만큼 향후 판도를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최윤정 이준서 기자 fusionjc@yna.co.krmerciel@yna.co.kr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