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막내' 기성용(19.FC 서울)이 위기의 허정무호를 수렁에서 건져냈다.

기성용은 10일 밤 중국 상하이 훙커우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북한과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B조 1차전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24분 귀중한 동점포를 뿜어냈다.

후반 19분 북한 홍영조에게 페널티킥 선제골을 내줬을 때만 해도 한국은 위기에 휩싸였다.

수비진이 우왕좌왕하며 골 기회를 계속 허용하며 패색이 짙게 드리웠다.

하지만 선제골을 헌납한 뒤 5분 만에 터진 기성용의 동점골로 한국은 겨우 1-1 동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특히 기성용의 이날 골은 2008 베이징올림픽 8강 진출 실패에 이어 한국 축구에 대해 쏟아질 팬들의 비난과 외면을 조금이나마 잠재우는 한 방이었다.

득점 장면은 기성용의 골 감각이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김남일(빗셀 고베)과 함께 중원에서 1차 수비벽을 쌓는 '더블 볼란테' 역할을 맡았지만 전방으로 자주 나서며 공격 본능을 내비쳤던 기성용은 후반 24분 미드필드 왼쪽에서 김두현(웨스트브롬)이 넣어준 크로스를 아크 부근에서 가슴으로 트래핑한 뒤 뒤로 넘어지며 강한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기성용의 발등을 떠난 볼은 견고하게 잠겨 있던 북한 골문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월드컵 3차 예선 6경기에서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던 북한 수문장 리명국이 몸을 던져봤지만 볼은 이미 골그물을 힘차게 흔들고 있었다.

기성용은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공격적으로 하라고 주문했고 골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서 "무리해서라도 골을 넣고 싶었다"고 A매치 데뷔골 소감을 전했다.

광양제철고 교사인 축구인 출신 아버지 기영옥(51)씨의 영향으로 축구를 시작한 기성용은 고교 시절 호주에 축구유학을 다녀왔으며 16세 이하 대표팀부터 20세 이하 대표, 최근 올림픽 대표까지 엘리트 코스를 거친 유망주.

터키 출신 명장인 세뇰 귀네슈 감독이 FC 서울 지휘봉을 잡기 시작한 2006년 서울에 입단했고 곧바로 가능성을 인정받아 주전으로 발탁되면서 급성장했다.

작년 3월24일 우루과이와 평가전을 앞두고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핌 베어벡 감독의 부름을 받아 태극마크를 달았던 기성용은 1년이 훌쩍 넘은 지난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요르단과 평가전에서야 A매치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다.

당시 텅 비다시피한 관중석을 보고는 "올림픽에서 우리가 못했기 때문이다.한국 축구를 계속 성원해주실 수 있도록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더 열심히 뛰겠다"고 했던 기성용이 자신의 다짐을 실천하는 동시에 두 번째 A매치에서 데뷔골을 터트리며 스타 탄생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기성용은 다만 1-1로 끝나 승리를 챙기지 못한 것과 관련해서는 "상대 수비수가 많아 아쉬웠다.박주영, 신영록 같은 형들이 빠져서 아쉽고 전반전에는 세밀한 전술을 펼치지 못해 힘든 경기를 펼쳤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지난 번 요르단과 평가전에서 골을 넣었던 이청용이 부러웠는데.."라고 웃음을 지은 뒤 "베이징올림픽이 끝나고 한국축구가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고 세대교체 중이니 기다려 달라"고 덧붙였다.

북한 공격수 정대세와 홍영조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는 "생각보다 잘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많이 움직였지만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상하이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horn9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