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불안 진정 전망..안심은 금물"

재경.금융팀 = 9월 들어 위기설로 혼란에 빠진 금융시장이 이번 주 고비를 맞을 전망이다.

위기설의 진원지인 외국인 보유 채권의 만기가 오는 9~10일에 몰려있는 데다 정부가 10억 달러 규모의 채권 발행에 나서기 때문이다.

외국인 만기 물량이 무난히 소화되고 정부의 해외 채권 발행이 성공할 경우 금융시장의 불안은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미국 정부가 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를 조만간 내릴 것으로 보여 한국의 금융시장은 글로벌 신용경색에 따른 불안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고유가, 세계 경기 침체 등 대내외 여건이 좋지 않아 금융시장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 9~10일 외국인 채권만기 5조7천억원 집중
7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월 말 기준으로 12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외국인 보유 채권은 11조7천억 원으로 이중 7조 원(60%)이 9월에 몰려 있었으나 일부 만기와 재투자 등으로 지난 5일 현재 6조8천억 원으로 줄었다.

9월 외국인 보유 채권의 만기 물량 가운데 9일에 6천800억 원, 10일에 5조 원 등 이틀간 5조6천800억 원이 집중돼 있지만 정부는 거의 대부분 국채인 만기 도래 채권에 대한 상환자금을 이미 마련해 놓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또 국내 채권 투자의 기대수익률이 높아지고 있어 외국인이 상환을 받더라도 재투자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전문가들도 같은 입장이다.

따라서 외국인이 보유 채권을 일시에 팔고 한국을 떠나면서 환율과 금리가 급등하고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위기설은 실체가 없고 발생할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채권시장에서 외국인이 매수에 나서면서 이런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집계 결과, 이달 1일부터 4일까지 외국인은 1조825억 원의 채권을 순매수했으며 아직 대금 결제일이 돌아오지 않은 물량까지 포함할 경우 1조1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9월 만기 도래하는 채권을 보유한 외국인의 경우 이달 들어서 9천480억 원의 채권을 산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오는 10~11일께 10억 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해외에서 발행할 예정으로, 성공할 경우 위기설이 촉발한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우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금융시장을 흔들었던 위기설은 오는 10일이 지나면 실체가 없다는 것이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 최석원 채권분석파트장은 "7월까지 채권을 순매도하던 외국인이 최근 순매수로 돌아서 일부 외국인이 보유 채권을 팔고 빠져나가더라도 새로 유입되는 투자자금이 있을 것"이라며 "따라서 채권 순매도 금액은 크지 않을 것이고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을 확대시킬 정도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미국 정부, 모기지업체 구제조치에 관심집중
미국이 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정상화하기 위해 이들 기업에 대한 지분인수나 공적자금 투입 등 구제금융에 나서기로 한 것은 한국 금융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바니 프랭크 하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6일 성명을 통해 "헨리 폴슨 재무 장관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회에서 재무부에 부여한 권한을 사용하려고 한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들 모기지업체에 대한 조치에 대해 시장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글로벌 신용경색 완화→국제자본 한국이탈 축소→주식.외환시장 안정 등의 경로로 한국의 금융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주식.외환시장이 불안했던 원인중 하나는 글로벌 신용경색이었고 여기에는 이들 모기지업체가 큰 기여를 했다"면서 "미국 재무부의 조치가 제대로 된 것이라면 한국의 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패니메이.프레디맥 선순위채권에 대한 부담을 덜면서 훨씬 자신감을 갖고 외환관리에 나설 수 있게 된다.

한은이 보유하고 있는 이들 업체 발행 선위채권은 4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보유하고 있는 이들 채권이 부실화되면서 큰 타격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갖고 있었다.

한은 관계자는 "그동안 한은은 이들 업체가 발행한 선순위채권에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강조해왔으나 일부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구제금융조치가 확실히 이뤄지면 외환시장 관리에서의 심리적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조치가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세계적 신용경색은 한층 심해지면서 한국 금융시장은 더욱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 외환시장.증시 안정여부 이번주가 고비
지난 주 중반부터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원.달러 환율의 급등세가 진정되고 있지만 시장 참가자들의 불안 심리는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의 변동 폭은 일 평균 27.50원으로 지난 달 6.89원의 4배에 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보유 채권의 만기가 집중돼 있는 9~10일을 기점으로 외환시장의 안정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를 전후해 다른 악재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시장이 급속히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홍승모 차장은 "원.달러 환율이 1,080원을 넘어선 이후 급등한 것은 과열 현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당국의 개입 직후 손절매도가 촉발되면서 환율이 급락하는 양상을 감안할 때 주변 상황에 따라 1,070원 이하로 밀리면서 단기 상승 추세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위기설이 최근 주가 급락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증시도 이번 주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 만기일 이후 외국인 자금의 이탈 여부와 환율 움직임, 여기에 11일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결정과 같은 날 쿼드러플위칭데이(지수 및 개별주식의 선물.옵션 동시 만기일)도 중요한 증시 변수로 꼽히고 있다.

토러스투자증권 이경수 연구원은 "이번 주 증시는 불확실성이 큰 만큼 변동성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근 주가 급락을 야기한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면 반등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쿼드러플위칭데이의 프로그램 매물이 부담되나 외국인 보유 채권의 만기에 대한 우려가 사라질 경우 투자 심리가 다소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정부 불안요인 관리 강화.."안심은 금물"
정부와 금융당국은 위기설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안이 진정되더라도 대내외 여건이 좋지 않아 안심하기 힘든만큼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노대래 재정부 차관보는 지난 5일 브리핑에서 "위기설이 번져서 실물경제에까지 나쁜 영향을 줄까봐 우려했는데 다행히 일단 가닥을 잡아가는 것 같다"며 "대내외적 불안 요인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시장에 대한 충격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이번 위기설의 불씨가 된 국고채의 만기 분산과 조기 상환 등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할 계획이다.

정부와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달 중순부터는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위기설이 또다시 불거지지 않도록 개선해야할 점이 어떤게 있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위기설이 사라지더라도 정부가 안심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정부가 전방위 대응에 나서고 채권 만기의 실제 통계치가 확인되면서 위기설과 관련한 대내적인 불안 요인은 어느 정도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국제 금융시장, 특히 미국 금융시장에 돌발 변수가 발생할지 여부가 변수"라고 말했다.

한국씨티은행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일단 외환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기는 했지만 이는 외환당국의 개입에 따른 것"이라며 "문제는 전세계 금융시장이 기본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행히 위기설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글로벌 차원에서 오는 대외적인 리스크(위험)는 여전히 남아 있다"며 "가계 부채 등 우리 내부의 불안 요인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keunyo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