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전반적인 자산시장 조정 과정에서 많은 자금이 이탈하고 있다. 특히 여름 휴가철이 끝나면서 투기성이 강한 파생상품시장과 원유 등 국제 상품시장에서 자금이 많이 빠지는 것이 눈에 띈다.

일부는 금리 인상을 통해 중앙은행 창구로 흡수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이탈 자금은 단기 부동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머니마켓펀드(MMF)와 같은 단기 금융상품에 이탈 자금이 몰리는 것이 올 하반기 이후 자금시장에 나타나는 새로운 추세다.

우리만 하더라도 올 6월 이후 30조원 이상이 각종 단기 금융상품에 들어왔다는 것이 관련 기관들의 통계다.

한가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상품시장에서 이탈한 자금을 중심으로 많은 대기성 자금이 최근에는 달러표시 자산과 그린 백(달러화 별칭)에 몰리면서 달러 가치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반면 원유를 비롯한 대부분 상품은 이제는 너무 빠른 하락 속도가 우려될 정도로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최근 들어 달러표시 자산과 그린 백에 이탈 자금이 몰리는 것은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flight to quality) 경향이 높아짐에 따라 달러,금,유로화 등과 같은 안전자산 가운데 그래도 달러표시 자산과 그린 백이 낫지 않으냐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과도기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이탈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됨에 따라 국가별로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최대수혜국은 미국이다. 뜻하지 않게 상품시장에서 이탈한 자금 유입으로 모기지 사태 극복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 조달이 용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신용위기 가능성이 제기돼 왔던 태국,동유럽 3개국 등 개도국들은 자금 이탈로 위기 상황이 더 악화하고 있다.

투자자 간에 명암이 엇갈리기는 마찬가지다. 남보다 앞서 올 상반기에 미국 부동산 등 달러표시 자산과 그린 백에 투자한 사람들은 이미 많은 수익이 나고 있다.

언젠가는 정상을 회복한다는 투자의 기본원칙을 믿고 가격이 떨어졌을 때 사두는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의 성공 사례다. 반면 자금 이탈로 가격이 급락하고 있는 상품 관련 주식과 펀드,자원 부국에 투자한 사람들은 단기간에 너무 큰 손실이 나 당혹스러운 눈치가 역력하다.

그런 만큼 손실이 난 사람을 중심으로 벌써부터 달러표시 자산에 일부 들어가고 있는 이탈 자금이 다음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모든 경제활동에는 리듬이 있다. 지금은 아무리 극심한 불황이라도 언젠가는 풀린다. 앞으로 불확실성이 줄어들 경우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예상한다면 증시부터 물꼬가 트이는 것이 관례다.

최근 들어 워런 버핏과 같은 슈퍼 리치들이나 세계적인 기업인들이 보다 긴 안목에서 모기지 사태와 트리플 약세를 보이는 한국 등 아시아 사태에 대처해 나가거나 투자자와 고객들에게 대처해 줄 것을 강조하는 것도 이 같은 시각에서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겸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부소장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