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철 <서울대 교수ㆍ원자핵공학>

올해는 우리나라가 원자력발전을 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원자력발전은 경제적이며 안전하게 싼 값으로 전력을 공급함으로써 국가 산업발전에 큰 기여를 했으나,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부 반핵단체들은 계속해서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을 문제삼았고,사용후핵연료의 축적을 걱정하면서 반대했다. 지난 30년 동안 단 한 명의 사고도 없이 국가동력의 40% 가까이를 생산한 대가로는 너무 아쉬운 점이 많다. 더구나 엊그제 확정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도 확인하듯이 원자력 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59%로 늘리고 원전 10기를 신설하는 등 신재생에너지의 하나인 원자력은 우리의 주력 에너지원이 돼가고 있다.

그동안 원자력 안전 운전에 관해서는 어느정도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한 것 같다. 문제는 반대 여론중 하나인 사용후핵연료가 누적되면서 앞으로 이를 어떻게 처분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 연료의 처리는 중ㆍ저준위 폐기물의 처분보다 훨씬 엄격한 관리를 필요로 한다. 방사선 레벨이 높은 고준위 폐기물을 인간환경 및 생태계로부터 영구히 격리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고준위 폐기물 처분에 관한 정책을 아직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처분방식을 선택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용후핵연료의 잠재적 가치를 고려해 처분을 유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용후핵연료에는 유용한 우라늄이 많이 남아있고,재활용 가능한 플루토늄이 상당량 포함돼 있다. 특히 플루토늄은 핵특성이 매우 뛰어나,선진국에서는 이미 플루토늄과 우라늄의 혼합연료를 개발해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있다.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해선 반드시 재처리과정을 거쳐야 하며,이를 위해선 재처리한 플루토늄을 핵무기로 전용하지 않는다는 투명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특히 한반도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로 세계의 이목을 받고 있어,당장 재처리를 수행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우선 북한이 우리의 재처리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불필요한 논쟁에 휩싸여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추구하는 우리의 의지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당분간은 사용후핵연료를 중간저장 형태로 보관하다 남북관계가 호전되면 활용 용도를 찾자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사용후핵연료 처분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를 계속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다. 현행 원자력법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료는 최소 14년 이상을 발전소 내부의 저장조에 보관하도록 돼 있다. 이는 핵연료에서 발생하는 높은 열과 많은 양의 방사능을 충분히 감소시킨 후에야 발전소 외부로 이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30년을 운전하다 보니 일부 원자력발전소는 이미 저장조의 용량을 초과하고 있다. 따라서 추가적인 사용후핵연료 저장 공간 확보가 급박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에서 중요한 문제는 가장 먼저 국민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는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 이는 고준위 폐기물의 그야말로 '안전하고 영구적인' 보존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에는 고준위폐기물 처분부지 확보,처분방식에 대한 국민 합의 등 많은 기술적 난제가 포함돼 있으므로,충분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투명한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고준위폐기물을 재처리하지 않으면서도 최소로 감소시킬 수 있는 과학적 기술을 개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고준위폐기물 처분방식이나 세부적인 공학 기술에 대한 개발이 필요하며,이를 통해 처분과 관리가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음을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공론화의 관건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