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수용 여부 미지수..비방전 가열
승기 잡은 러시아군 후퇴 시기 관건


그루지야 자치 영토 남오세티야 독립 문제로 촉발된 그루지야와 러시아 간 전쟁이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의 중재 노력으로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그루지야에 대한 공습이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고 양측의 비방전이 가열되고 있는데다 러시아가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의 퇴임을 조건으로 휴전 협상을 벌이고, 사카슈빌리를 전범자로 몰아갈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어 휴전 협정 체결까지는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 그루지야 서명한 EU 평화안 러시아에 전달 예정
이날 오후 모스크바에 도착한 EU 순회의장국을 맡고 있는 프랑스의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교장관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의장인 알렉산더 스텁 핀란드 외무장관은 전날 사카슈빌리 대통령과 자신들이 서명한 EU 평화안을 러시아 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전날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휴전 제안을 `일방적'이라며 수용하지 않았던 러시아가 이 평화안을 받아들이고 이번 전쟁을 종료하게 될 지 주목된다.

쿠슈네르 장관은 "먼저 양국 군대가 처음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며 그 다음에 평화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루지야와 러시아가 상호 비방전을 펴고 그루지야의 우방인 미국이 러시아를 코너로 몰아붙이면서 러시아가 쉽사리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이날 국영 TV에 출연, "미국이 그루지야 군의 이라크 철수를 도와 러시아 군의 작전을 방해하려 하고 있다"면서 "서방이 누가 진정한 침략자고, 희생자인지 구별을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푸틴 총리는 또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공격행위를 이라크 지도자 사담 후세인의 전쟁범죄에 비유했으며 보리스 그리즐로프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의장은 이타르타스 통신에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배은망덕한 공격은 1941년 소련에 대한 히틀러의 공격이나 다름없다"고 비난, 그루지야를 자극했다.

앞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태와 관련, 러시아가 `부적절한 반응'을 하고 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에게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그런가 하면 라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은 11일자 공산당 기관지에 실린 성명에서 러시아 정부가 남오세티아에 병력을 파견한 것은 그 지역의 평화 유지를 위한 합법적인 조치라며 러시아 편을 들어 눈길을 끌었다.

▲국제사회 중재 노력 계속
휴전이 확정되기 전까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도 이번 주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드미트리 로고진 나토 주재 러시아 대사는 12일 러시아-나토 위원회 특별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의했으며 나토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12일 에카테르리나 트케쉬라쉬빌리 그루지야 외무장관과 만날 예정으로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이번주 초 모스크바를 방문,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만나고 EU 외무장관들도 13일 브뤼셀에서 모여 사태 해결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어서도 그루지야 사태 해결을 위한 돌파구가 마련될 지 주목된다.

앞서 EU 집행위원회는 정례 브리핑을 통해 러시아는 그루지야 영토에서 군사행동을 중단하고 양측은 신속하게 협상 테이블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OSCE의 남오세티야 감시 활동을 제안했다.

▲러시아, "휴전에 조건없다"
러시아 외무부는 러시아가 사카슈빌리 사임을 휴전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는 보도를 부인했다.

보리스 말라크호프 외무부 부대변인은 "그루지야 국민을 대신해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서 "사카슈빌리의 운명은 그루지야 국민과 그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 침략을 전쟁범죄로 몰아가고 있는 것도 그루지야가 쉽사리 총을 내려 놓지 못하는 이유로 꼽히고 있다.

아나톨리 노고비친 러시아군 부참모장(중장)은 "그루지야군이 민간인들에게 침략 행위를 저질렀으며 이는 `전쟁범죄'에 해당된다"고 말했고 로고진 대사도 "러시아는 전범인 사카슈빌리 대통령과 어떤 협상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외무부 부대변인은 또 "대량 학살에 연루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고 이를 조사할 재판소를 세우는 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곳곳서 교전..압히지야 제2전선 형성
러시아가 휴전 제안을 공식적으로 접수하고도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 국지적 교전이 11일에도 이어졌다.

그루지야 당국은 50여 대의 러시아 전투기들이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에서 북서쪽으로 65km 떨어진 고리 지역 군 기지와 마크하타 산의 관제시설 시설에 폭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또 남오세티야에 주둔하던 러시아 기갑부대가 그루지야 영토로 진격하려 했으나 그루지야 육군의 반격을 받고 철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루지야가 철군했다고 주장한 남오세티야 수도 츠힌발리에서도 이날 오전 그루지야군의 공격으로 3명의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숨지고 18명이 부상했다고 인테르 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또 러시아 전투기 2대가 추가로 격추됐고 그루지야 공군 소속 수호이-25기도 이날 남오세티야 상공에서 격추됐다.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그루지야 영토 내 500대의 러시아 탱크와 2만5천명의 러시아 병력이 동원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인테르 팍스 통신은 러시아군이 압하지야 내 코도리 계곡에 주둔한 그루지야 군에 최후통첩을 보냈고 현재 9천명의 병력과 전차 350대가 대기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루지야 당국은 자국 군대가 무장해제하지 않을 것이며 최후통첩을 거부할 것이라고 밝혀 이 지역이 남오세티야에 이어 `제2전선'이 형성될 지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 군대가 압히자야 인근 세나키마을까지 진격해 들어갔으며 서부 도시 주그디디의 경찰서 건물을 장악했다고 확인했다.

특히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남오세티야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중요한 작전이 완료됐으며 츠힌발리는 러시아 평화유지군의 수중 하에 있다"고 밝혔지만 이 발언이 러시아군의 작전 종료를 의미하는 것인지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으로 남오세티야에서 2천여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그루지야는 지금까지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13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또 희생자 가운데는 그루지야 출신 기자 등 언론인 10여명 죽거나 다쳤고 외국인 민간인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러시아 연방보안국(FSB)는 러시아에 대한 적대행위를 준비 중이던 그루지야 첩보원 10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연합뉴스) 남현호 특파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