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얼마 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열렸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한때 존폐의 기로에 처하기도 했다. 성을 상품화한다며 안티미스코리아 운동이 일어나 공중파 방송 중계가 중단되고 수영복 공개 심사가 폐지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코리아는 버젓이 살아남았다. 예전처럼 메이저 지상파방송을 타지는 못할지라도 미스코리아 대회는 여전히 장안의 화젯거리다. 근자에는 그저 명맥을 잇는 수준이 아니라 뷰티산업,미용 향장산업을 선도하는 견본시로서,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외모지상주의의 파이어니어로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단지 이번 대회는 미스코리아 진의 미모와 선발기준을 둘러싼 논란,성인모바일 화보를 찍은 것으로 드러난 입상자의 자격논란 등 유난히 구설수가 많았다.

사실 미스코리아는 이미 하나의 사회제도이자 문화현상으로 정착됐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한국 최고의 미인을 뽑는다는 캐치프레이즈와 상징이 먹혀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대중의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 때문이다. 성을 상품화한다지만 어디 상품화되는 게 여성,성뿐이겠는가,자본주의사회에서는 모든 게 상품화되는데 그렇게 따지면 도대체 무얼 할 수 있다는 말인가,사람들은 이렇게 되뇌며 이번엔 누가 뽑혔나,뽑힌 진선미들이 얼마나 예쁜가 하며 신문을 뒤적인다.

미스코리아로 선발된 미인들은 선망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민간외교사절의 역할까지 맡아 이른바 공인의 반열에 오르고 갈채 속에 사회적 기대를 모은다. 이처럼 미스코리아가 험난한 도전과 위기를 넘기며 살아남고 또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자연 선택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수용됐기 때문이다. 비단 미스코리아만이 아니다. 감귤아가씨니 목화아가씨니 메이퀸이니 각종 미인대회들이 퍼져 나간 것도 바로 그런 사회적 수용의 구조와 맞물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한국에서 '외모가 인생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공리는 매우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아름다운 외모는,심지어는 노무(NOMU)족,즉 'No More Uncle'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된 중년남성들에게조차도 경시할 수 없는 경쟁력이다. 살 빼고,수술하고 끊임없이 가꿔야 살아남는다. 연예인 같은 얼굴이 되기 위한 청소년들의 몸부림은 그런 사회적 선호체계가 작동하는 한 일시적 유행이나 병폐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적응행동이자 생존경쟁이다. 미용 화장품 다이어트 성형 등 뷰티산업,외모산업은 불황을 모르고 십수조원대를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팽창한다. 이제 외모지상주의는 불쾌하고 불편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그 연장선상에서 부를 창출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무수한 이해관계자들을 먹여 살리기까지 한다. 미스코리아는 바로 그런 외모 문화와 뷰티 산업의 엠블럼이다.

그러니 미스코리아를 누가 미워하랴.한때 미스코리아는 나라가 국가대표미인을 뽑는 걸로 알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미스유니버스 등 세계대회에서 당당히 한국대표로 나가 경연을 벌이고 때로 입상도 하는 광경을 보며 가슴 뿌듯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 안다. 미스코리아는 국가가 뽑는 국가대표미인이 아니라는 걸,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동안 미스코리아 선발을 둘러싼 의혹이 드물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이번 대회만큼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도 없었다. 미스코리아가 살아남은 게 사람들 덕이었던 만큼 그 미래도 사람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행여 미스코리아 선발을 둘러싼 비리나 추악한 모습이 드러난다면 미스코리아의 미명은 급격한 멸종의 박명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미인을 뽑아도 공정해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