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집회와 인터넷 토론을 직접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로 보기는 어렵다. "(안현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인터넷을 통한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이를 소화해 내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윤성이 경희대 교수)


인터넷상 법치주의 강화 시급

23일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 시대의 성숙한 민주주의 정착 방안' 토론회에서는 디지털 민주주의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이냐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임태희ㆍ안형환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사가 주관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인터넷 민심이 전체 국민의 민심을 대변할 수 없으며 인터넷 상에도 법치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익명성은 민주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디지털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참석자들은 "디지털 민주주의가 대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없다"는 데는 대부분 공감했다. 발제에 나선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촛불 집회가 일어난 건 대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며 "대의 정치를 회복하는 것만이 성숙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방안"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4ㆍ9 총선 직후 설문조사 결과 자신의 의견을 잘 대변해 주는 정당이 있다는 대답은 33.1%에 불과했다"며 "이러다 보니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겠다.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디지털 민주주의'로 불리는 인터넷 토론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변희재 인터넷미디어협회 정책위원장은 "다음 아고라는 토론 사이트가 아니라 엄연히 편집장이 존재하는 정치 웹진"이라며 "최근의 쇠고기 정국을 인터넷 민주주의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변 위원장은 거대 포털의 여론 독점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뒤 "미국이 인터넷에서 현실과 똑같이 법치주의를 적용하듯이 우리도 인터넷 상에서의 법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현실 논설위원도 "대의 민주주의도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촛불 집회가 참여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정 계층이 인터넷 공간을 독점하고 있는 만큼 인터넷 민심이 전체 민심을 대변할 수도 없다"는 논리다. 그는 또 "인터넷 산업의 초창기에는 규제할 수도 없었고 규제가 바람직하지도 않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단계에 올라서 순기능과 역기능이 모두 드러난 만큼 역기능은 막아야 한다"며 인터넷 실명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정호 경찰대 교수는 "'기동대 직무명령 포기''연행 여성 성폭행'과 같은 허위 사실을 게재한 건 인터넷의 익명성을 악용해 타인의 권리와 명예를 훼손한 범죄 행위"라며 "온라인 상의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ㆍ시민사회 소통구조 만들어야

그러나 이병선 오마이뉴스 정치경제 부국장은 "촛불 집회와 그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디지털 대중과 아날로그 정부의 충돌"이라며 "정부의 성찰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 부국장은 또 "익명의 글쓰기는 표현의 자유를 확대했고 민주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며 "부작용도 있지만 익명성 자체를 부정하는 건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윤성이 경희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대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더라도 시민들의 정치 참여 욕구를 충족하기 어렵다"며 "오프라인 토론처럼 규칙을 만들고 문화를 조성해 온라인 토론을 훈련하고 연습하는 것이 디지털 민주주의의 첫출발"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청와대 홈페이지에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었지만 네티즌들은 청와대 홈페이지를 찾지 않는다"며 "정부 스스로 (아고라와 같은) 토론의 장으로 나와 정보를 유통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촛불 집회가 두 달 이상 지속되는 건 정부와 시민사회,보수와 진보 세력의 단절화 현상 때문"이라며 "소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